다양한 갑옷들
위·촉·오 삼국시대에 일반 보병은 어떤 무기를 썼을까요? 당시에는 진나라나 한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극’이 여전히 주 무기로 쓰였습니다. 하지 삼국시대에는 철기무기가 완전히 자리 잡아 청동무기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병기는 ‘환수도’라고 불리는 직도가 쓰였는데, 칼날이 휘지 않고 직선이었습니다. 옷은 쇳조각을 겹쳐서 만든 ‘어린갑’이 쓰였습니다. 이전에 쓰였던 ‘찰갑’보다 쇳조각끼리 겹치는 부분이 넓어 적의 칼날이 뚫기 힘들었죠. 어린갑에는 통수개와 양당갑, 명광개 등이 있었는데, 특히 명광개는 장수급의 고급 지휘관이 착용했습니다. 명광개는 당나라 때까지 대표적인 갑옷으로 자리 잡습니다. 노궁은 ‘쇠뇌’란 이름으로 역시 쓰였습니다. 활은 복합궁이 쓰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보병의 경우 쇠뇌, 기병의 경우는 활을 주로 썼다는 점입니다.
중요 전투 공성전에 쓰인 무기
춘추전국시대부터 중국에는 각지에 성곽이나 도시가 유럽에 비해 많이 구축되었고, 삼국시대에는 견고한 성에 대한 공성전이 매우 중요한 전투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공성전에 쓰이는 무기도 많이 개발되었죠.
고대 중국의 병법서인 <손자>에는 공성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하는 것으로, 공성을 할 때에는 망루와 ‘분온차’를 먼저 정비하라고 했을 만큼 분온차는 공성의 필수무기였습니다. 분온차는 전투요원들을 성벽 앞까지 운반하는 수레인데, 약 10명의 병사가 탑승했습니다. 불화살에 타지 않도록 전체를 소가죽으로 덮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지붕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위에서 떨어지는 적의 공격을 견딜 수 있게 했습니다.
‘충차’는 중국식 파성추로서 ‘당차’ 또는 ‘당거’라고도 불렸습니다. 적의 성에 접근하여 수레 위에 매달린 통나무로 성문이나 성벽을 부수는 무기였죠. ‘소거소차’는 일종의 이동식 망루로서 병사를 태운 작은 집을 끌어올려 높은 곳에서 성 안의 상황을 살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종의 곤돌라였던 셈이죠.
관도대전에서 활약한 무기는?
조조와 원소가 맞붙은 관도대전에서는 두 가지 공성병기가 대활약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거대 공성탑인 ‘정란’이었습니다. 정란은 높이가 10미터 이상이었으며, 꼭대기 망루에는 일반적으로 십수 명의 궁 병이나 쇠뇌병이 올라가 적에게 화살 비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거대병기였기 때문에 해체와 조립을 해야 운반이 가능했고, 거대한 크기 때문에 적군의 집중공격 목표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한때 이 무기로 조조군을 궁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관도대전의 또 한 가지 중요 공성병기는 중국판 투석기인 ‘발석차’입니다. ‘벽력차’라고도 불렸으며, 지렛대의 원리를 사용하여 50킬로그램 이상의 돌을 70미터 이상 날릴 수 있었죠. 조조는 발석차로 원소군의 정란을 격파해 위기상황에서 탈출했습니다.
‘새문도거’는 부서진 성문에 배치하는 방어용 무기입니다. 날카로운 여러 개의 칼날이 붙은 면으로 적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함께 ‘낭아박’은 쇠못을 잔뜩 박아놓은 무거운 판을 줄에 매단 방어용 병기의 일종으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에게 떨어뜨려 침입을 막는 무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운제’
‘운제’는 이동식 공성용 사다리로서 접이식으로 되어 있었고, 사다리 끝 부분에는 성벽에 사다리를 걸기 위한 갈고리가 달려 있었스니다. 운제는 우리나라 사극에서 공성전을 묘사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공성무기이기도 하합니다. 전체에 소가죽과 진흙을 발라 불화살에 대처했습니다. 하지만 해자가 파져 있는 성벽에는 접근하기가 어려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죠.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1.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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