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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IT제품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이유

경제상식 경제공부/디플레 전쟁

by 스마트북스 2020. 9. 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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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법칙

반도체 산업에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라는 매우 유명한 학습곡선이 존재합니다. 무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세계적인 반도체업체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반세기 전에 이를 처음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무어는 2년마다 집적회로(IC)의 저장능력이 2배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흐름은 1960년대 이후 201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동일한 성능을 가진 집적회로의 제품가격은 2년마다 절반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다음의 그림은 인텔의 집적회로에 트랜지스터가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인텔에서는 1971년 트랜지스터가 3,500개인 인텔 4004로 시작하여 10억 개 이상 들어간 인텔 코어 i7까지 무어의 법칙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림에서 세로 축의 한 칸은 10배씩 늘어납니다)

무어의 법칙은 정보통신산업의 끝없는 생산성 향상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따라서 세계의 주요국들은 가파른 학습곡선을 타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만 가파른 학습곡선을 타는 것은 아닙니다. 통신망의 대역폭은 집적회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대됩니다. 이른바 길더의 법칙(Gilder’s Law)이죠. 조지 길더(George Gilder)는 통신망의 대역폭이 집적회로의 계산능력 향상 속도의 3배 크기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최근 클라우드 서비스가 활성화된 데에는 저장/연산 능력의 개선뿐만 아니라 전송처리 능력의 발달도 큰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죠.

개선이 아닌 ‘아래로 뛰어내림’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왜 반도체 산업 같은 일부 산업은 가파른 학습곡선을 타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치열한 경쟁 속에 혁신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혁신을 지속하는 것을 묘사한 다음의 인용문 내용은 음미할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혁신은 진화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인생이든 직장생활이든 우리는 어쨌든 길을 가고 있습니다. (중략) 기업들은? 대부분의 기업들은 뜁니다. 그것도 어떻게 뛰느냐 하면, 정신없이 달립니다. 밤낮없이 뜁니다. 뛰고, 또 뛰고, 계속 뜁니다.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막 뛰다 보면 낭떠러지를 마주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선으로 얘기하자면 불연속점이 생깁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세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첫째 멀리 뛰는 것, 둘째 높이 뛰는 것, 셋째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
_ 김재범, 김동준, 조광수, 장영중(2012), 『포스트 잡스, 잡스가 멈춘 곳에서 길을 찾다』, 지식공간, 172~173쪽.

이 비유에서 확인되듯, 반도체 산업은 끊임없는 제약에 부딪힙니다. 신기술이 발명되기도 하고, 고객의 기호가 바뀌기도 하며, 규제나 표준이 바뀌기도 하죠. 기존의 생산방식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때 혁신기업들이 과감하게 아래로 뛰어내림으로써 현재까지 혁신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산업입니다.

디스크 드라이브 산업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기술변화는 ‘존속성 혁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와해성 기술(=파괴적 기술)’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종류의 기술변화들은 그 수가 매우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선도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로 인해 도태되었다.
가장 중요한 파괴적 기술은 드라이브 크기를 작게 하는 구조적 혁신이었죠. 이를 통해 직경이 14인치였던 디스크가 8인치, 5.25인치, 그리고 3.5인치로 축소되더니 급기야 2.5인치에서 1.8인치까지 작아졌다. (중략)
이런 기술은 기존 시장 고객들의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초기에는 기존 시장에서 거의 각광받을 수 없었다. 즉, 이러한 기술은 주력시장과 동떨어져서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신규 시장에서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속성들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_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1999), 『성공기업의 딜레마』, 모색, 64~65쪽.

혁신의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2000년대 중반 휴대폰 업계의 공룡이었던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개발해 놓고도 대량생산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시장을 이미 지배한 상태에서 고객이 필요로 하지 않는 신제품을 생산할 동기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20076월 말에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며 휴대폰 시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었고, 경제에 거대한 수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죠.

가격 하락 흐름은 지속된다

물론 무어의 법칙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면이 많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 교수는 그의 역작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를 통해 2000년대 중반을 고비로 무어의 법칙이 깨졌다고 지적합니다. 고든 교수는 그 이유를 수요에서 찾습니다. , “데스크톱에 슈퍼 속도를 내는 칩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무어의 법칙이 깨졌다는 것입니다.(로버트 J. 고든(2017),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생각의힘, 635)
물론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제기됩니다. 반도체 산업의 생산성 향상 흐름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찮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음의 그림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1990년 이후 미국의 생산자물가와 반도체 가격의 흐름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여기서 생산자물가란 기업들끼리 거래하면서 지불하는 물가입니다. 그림을 보면, 미국의 생산자물가는 꾸준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반도체 가격은 끝없이 하락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반도체 등 정보통신산업이 주도하는 혁신의 속도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제품가격의 하락 흐름 그 자체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포스트는 디플레 전쟁(홍춘욱)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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