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나라 유방은 왜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

본문

중국 본토의 골치, 흉노

흉노는 중국에서 유목민족을 통틀어 낮춰 부르는 의미의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동쪽으로 시베리아 일대에서 몽골, 서쪽의 중앙아시아 등지의 유목민족들이었습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천하의 중심, 이른바 중원이라고 불렀는데, 이 중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각각의 이민족(오랑캐)을 동이, 서융, 남만, 북적으로 불렀습니다. 흉노족은 전형적인 유목민족인데, 유목민족이 농경사회를 침략하는 일은 고대에서부터 빈번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죠. 유목민족의 생활터전은 대단히 척박하기 때문에 곡식에서부터 생필품까지 모든 것을 약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본토에 강력한 왕조가 수립될 때마다 흉노를 몰아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유목민족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합이 매우 힘들다는 겁니다. 부족 개념이기 때문에 민족의식이 매우 약한, 이른바 자유로운 영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사이가 틀어진 부족끼리는 불공대천의 원수로 박 터지게 싸우죠. 그러면서도 중국에 통일왕조가 세워지기만 하면 흉노는 손에 손을 잡고 어김없이 침략을 시작했고, 중국 대륙에 통일왕조의 존립은 항상 유목민족과의 전쟁에서 성패가 났습니다.

흉노의 걸출한 리더, 묵특선우

한나라 때 흉노에서 묵특선우(?~BC174)라는 걸출한 리더가 출현합니다. 그는 유목세계의 패권을 잡은 인물로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을 모두 죽이는 골육상쟁을 통해 선우왕에 올라 통합이 힘든 유목민족 세력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묵특선우는 유목민족으로서 강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나라 기병은 전차에서 단기필마의 기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여서 질주하는 말 등에서 활을 쏘아대는 흉노의 궁기병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죠. ‘한나라 기병 100명을 흉노 기병 세 명이 이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야전에서는 흉노족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광대한 지역에 점점이 흩어져 사는 유목민족의 특성상 전략거점을 찾기가 매우 힘든 구조여서 포착 섬멸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보급문제였습니다. 지속적으로 보급을 받아야 하는 한나라 군대와 달리 흉노는 유목민족 특유의 시스템이 있었죠. 유목민족은 이동생활을 하므로 가족 구성원은 자연스레 병참기지가 되었고, 한 가정당 4~5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전투 직전에 가장 상태가 좋은 말을 골라 타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소규모 부대로 기병을 편성해 히트앤드런같은 팀플레이가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먼 길을 와서 기진맥진한 한나라 군대 앞에 컨디션 좋은 말을 탄 흉노족이 맞짱을 뜨면 승패는 뻔했습니다. 또한, 한나라 군대는 말을 달리며 멀리멀리 도망다니는 흉노족을 쫓아다니다가 지칠 대로 지쳐서 토벌을 때려치우고 돌아오기 일쑤였고, 토벌은커녕 오히려 흉노에게 큰 화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실패로 돌아간 유방의 흉노 토벌

최초의 통일왕조 진나라가 불과 15년 만에 멸망하자 중국은 다시 내전에 돌입했고, 중원이 어지러운 와중에 흉노는 세력을 키웠습니다.
역발산기개세의 영웅 항우의 초나라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은 대규모 군사를 동원해 흉노 토벌에 나섰지만, 흉노의 영토인 평성(오늘날 산서성 일대)’을 공격했다가 오히려 흉노족의 반격을 받아 백등산에서 7일 동안이나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기도 했습니다. 유방이 이 위기를 벗어난 지략은 약간 치졸합니다. 당시 흉노족은 선우의 부인, 즉 왕비도 자기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한나라 밀사가 왕비에게 찾아와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지금 그대의 남편이 한나라를 멸망시킨다면, 그는 분명 한나라 여자를 왕비로 맞을 것이오.”
왕비의 눈초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음은 당연지사. 여자의 질투심을 유발한 이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유방은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60년이나 조공을 바친 굴욕적 화친

유방은 흉노와 매우 굴욕적인 화친을 맺고 해마다 술, 비단, 곡식 등의 조공을 바치고 한나라 공주를 선우에게 시집보내야 했습니다.
유방이 흉노와 맺은 화친의 조건은 이랬습니다.

첫째, 한의 공주를 흉노 선우에게 의무적으로 출가시킨다.
둘째, 한이 매년 술, 비단, 곡물을 포함한 일정량의 공물을 바친다.
셋째, 흉노와 한은 형제맹약兄弟盟約을 맺는다.
넷째, 만리장성을 경계로 양국이 서로 상대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

심지어 유방은 흉노와 전쟁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조공에 한번 맛을 들인 흉노는 걸핏하면 국경을 넘어 한나라를 위협해 삥을 뜯곤 했습니다. 7대 황제 한무제漢武帝가 등극하기 전까지, 한나라는 무려 60여 년이나 눈물과 설움의 삥 뜯김을 당했습니다.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