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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왕전은 왜 전쟁중임에도 진시황에게 땅을 달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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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의 실패

한나라, 조나라, 위나라를 차레로 이기며 진나라는 중원의 노른자위를 모조리 차지했습니다. 중원을 호령하게 된 진나라의 다음 타깃은 연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배후의 초나라가 여전히 근심덩이였죠. 진나라는 아예 화근의 싹을 없애기 위해 강대국 초나라와 먼저 전쟁을 치를 것을 결심합니다.
진왕 정(훗날 진시황)은 만조백관을 불러놓고 대초나라 전략을 고심하며 물었습니다.
초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군사력이 필요한가?”
명망 높은 노장 왕전은 60만 대군은 족히 필요할 것이라고 했고, 젊은 장군 이신은 20만이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진왕 정은 젊은 장수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좋다, 이신. 그대에게 20만을 주겠노라. 가서 초나라를 멸망시켜 내게 바쳐라.”
이신은 호기롭게 20만 병력을 몰고 초나라로 향했습니다. 당시 초나라 총사령관은 항연. <초한지>의 영웅 항우의 할아버지입니다. 항씨 집안은 대대로 초나라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아오던 장군가였습니다. 최대의 국난을 맞은 초나라 백성들은 항연 장군의 지휘 아래 똘똘 뭉쳐서 진나라 침략군에 대항했습니다.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던 이신은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대패했습니다. 얼굴을 들 수 없었던 이신은 진왕에게 편지만을 보내 패전을 알렸습니다.

전쟁 중임에도 전답을 요구한 이유는

진왕 정은 60만 대군이 필요하다고 했던 노장 왕전을 불러 60만 대군을 내어주며 출정을 부탁했습니다. 진나라 병력 전부가 왕전의 지휘 아래로 들어간 것이죠.
전쟁터로 나가는 왕전이 진왕 정에게 부탁을 합니다.
신이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후에 이 늙은 몸을 쉴 수 있도록 넓은 전답과 영지를 내려주소서.”
이기고만 돌아오라. 내 무엇인들 아니 주겠는가?”
왕전은 출정하기 직전까지도 끊임없이 왕에게 전답을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진왕 정은 도장 꽝 찍은 문서까지 써주면서 왕전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군과 대치하는 상황, 왕전은 전선에서도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전답을 요구했습니다. 보다 못한 부하가 장군님, 좀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자 왕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진나라 병력은 모두 내 손안에 있어 힘으로 나를 당할 자가 없다. 그러나 나는 땅뙈기나 구걸하는 장수, 다른 뜻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왕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왕전은 초나라와의 전쟁이 지구전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왕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기습으로 초나라를 이기다

한편 초나라는 지난번 승리에 고무되어 사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초나라군이 진나라군 진영 앞에 나가 온갖 조롱을 하며 싸움을 부추겼지만 진나라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베테랑 장수 항연은 왕전의 작전을 눈치 챘습니다.
적장의 의도를 알았다. 우리로 하여금 지치게 해 방심하게 만든 뒤 기습하려는 것이다.”
항연은 왕전의 작전을 역이용하기로 합니다. 동쪽으로 후퇴해서 진나라군의 보급선을 길게 늘려 군량 수송에 애를 먹게 할 참이었습니다. 초나라 군대는 조심스럽게 후퇴를 하며 진나라 군대의 기습을 경계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군 진영에서는 미동도 없었죠. 30리 두 번, 100리 한 번을 후퇴해도 진나라 군대가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항연이 마음을 놓는 순간, 절묘한 타이밍에 진나라 군대가 들이닥쳤습니다.
왕전의 기습은 번개같이 시작됐고,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초나라 군대는 박살났고, 항연 역시 이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진나라군의 승리 요인은 실전형 지휘관 양성, 그리고 워낙 여러 나라와 전쟁을 하다 보니 속전속결에 특화된 군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초나라는 자기들 기준에서 판단하고 후퇴 전술을 이용했지만, 진나라 군대의 능력은 초나라의 그것 이상이었습니다. BC 223, 위나라가 멸망한 지 불과 2년 만에 초나라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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