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 와인버그의 인류원리

뜬금없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주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존재하죠?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진공 속의 에너지 속도는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11056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값의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퍼센트만 달라졌어도 우주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주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인 거죠.

인간의 존재 이유

【질문】 지구에 왜 지적인 생명체인 인간이 존재할까요?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1억 5,000만 킬로미터인데, 지구가 조금만 더 가까우면 너무 뜨거워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고, 조금이라도 더 멀면 너무 차가워서 존재할 수 없어요. 다행스럽게도 지구와 태양이 아주 적절하게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구에 지적생명체인 인간이 생겨날 수 있었죠. 이 역시 기적이죠.

우주의 존재 이유

【질문】 인간과 같은 지적생명체가 출현하기에 딱 좋은 환경을 가진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는 뭐죠?
이런 우주가 존재할 확률은 거의 0퍼센트에 가까운데 말이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3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신이 지적생명체가 출현하기에 딱 좋은 환경을 가진 우주를 창조했다는 거예요. 이런 경우에 확률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죠.
또 하나의 답은 여러 가지 종류의 우주가 생겨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는 거예요. 만물의 최소 단위에 대한 물리이론인 끈이론에 따르면, 생겨날 수 있는 우주의 종류가 10의 500승 개예요. 이렇게 많은 우주 중에서 지적생명체가 출현하기에 딱 좋은 환경을 가진 우주가 하나쯤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겠죠. 그리고 나머지 하나의 답이 바로 인류원리입니다.

인류원리

스티븐 와인버그(1933~)라는 미국의 물리학자는 우주상수를 설명하기 위해 인류원리를 내세웠어요. 인류원리에 따르면, 지적생명체가 출현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진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적생명체인 인간이 이 우주에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하나 들어보죠.
아주 머리가 좋은 천재 돌고래 한 마리가 동해에 살고 있다고 합시다. 이 돌고래가 왜 우주가 존재하는지, 왜 바다가 존재하는지를 연구했어요. 수년간 연구를 거듭한 결과, 이 우주에 돌고래가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진 바다가 존재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돌고래는 자기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살기 좋은 바다가 있는 게 너무 신기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건 기적이야. 이런 바다가 존재할 확률은 거의 없는데.”
여러분이라면 돌고래한테 뭐라고 하겠어요?
“그건 기적이 아니야. 그런 바다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네가 바다에 살고 있기 때문이야.”

인류원리에 대한 주목할 만한 반론을 보죠. 예를 들어 저는 간혹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 이런 의문이 들까요? 인류원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는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거예요. 내가 태어났으니 “내가 왜 태어났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거죠. 이는 “나는 인간이므로 나는 인간이다”라는 말과 같아요. 인류원리는 이처럼 동어반복인 하나 마나 한 주장이라는 것이죠.

이 포스트는 『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김필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