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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가능할까?

인문 교양 읽기/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by 스마트북스 2021. 2. 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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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주제는 형이상학의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근본적인 문제이며, 철학적으로 다루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이럴 때는 주제를 슬쩍 바꿔주면 좀 더 쉽게 풀리기도 합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시간여행은 가능한가?’라고 묻는 겁니다. 시간여행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무엇인지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시간여행의 정의

만약 시간여행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를 묻는 거라면 당연히 기술자들이 대답해야겠죠. 물리적으로 가능한지를 묻는 거라면 과학자들이 답해야 할 거예요. 그런데 시간여행이 논리적으로 가능한지를 묻는 거라면 철학자들이 대답해야 할 거예요.

우리의 관심은 시간여행은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즉 논리적으로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가 하는 문제예요. 우리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내일로 가요. 그러면 우리도 시간여행을 한 것인가요? 항상 미래로 가기만 하면 시간여행을 한 것인가요? 그렇지는 않겠죠. 그래서 시간여행에 관한 좀 더 정교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시간여행의 정의를 처음으로 내린 사람은 미국의 분석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1941~2001)입니다. 그는 시간여행을 이렇게 정의했어요.

“시간여행은 개별시간Personal Time과 외부시간External Time이 일치하지 않는 여행이다.”

외부시간은 나와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에요.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관점에서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약속한 시간이 바로 외부시간이죠.

이에 반해 개별시간은 특정한 사람만의 시간을 말해요. 그렇다고 해서 재미있는 게임을 하거나 놀이를 할 때는 쏜살같이 흐르지만, 제대를 앞둔 병장의 시간은 몹시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감정 상태에 따라 변하는 주관적인 시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별시간은 객관적인 시간입니다. 그런데 개별시간, 즉 혼자만의 시간이 어떻게 객관적일 수 있죠? 그를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개별자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정도를 개별시간의 기준으로 삼으면 돼요. 뜨거운 커피가 식는 속도나 수염이 자라나는 속도 등 변화의 속도를 개별시간의 속도라고 할 수 있어요.

 

시간여행의 종류

보통의 경우 외부시간과 개별시간은 일치해요. 외부시간이 1초 흐를 때 개별시간도 1초가 흘러요. 그런데 시간 여행자의 경우 외부시간과 개별시간이 일치하지 않아요. 개별시간이 외부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흐르냐에 따라 시간여행의 종류가 달라져요. 저는 시간여행을 점프형 시간여행, 시간 지연형 시간여행, 순환형 시간여행의 3가지로 구분해요.

점프형 시간여행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보면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는 타임머신의 시간을 맞춰놓고 기다리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어요. 과거나 미래로 마음대로 가요. 외부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르는데, 주인공 맥플라이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왔다갔다하죠.

시간 지연형 시간여행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관찰자의 기준으로 보면 관찰 대상의 시간이 느려지고,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지역에서는 중력이 약한 지역에 비해 시간이 느리게 흘러요. 이를 ‘시간 지연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겪은 사람은 시간 지연이 일어나지 않은 지역의 미래로 갈 수 있어요.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주인공 쿠퍼가 중력이 강한 곳에 있을 때 시간이 엄청 느려졌어요. 그래서 지구에 돌아올 때, 미래의 지구로가게 되어 노인이 된 딸을 만나게 되죠. 외부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르는데 쿠퍼의 시간은 엄청 느려진 거예요.

순환형 시간여행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주인공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요. 외부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르는데 개별자의 시간은 똑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거예요.

 

시간은 인간 관념이 만든 것?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을 이용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어떤 사람이 특정 궤도로 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과거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어떤 사람들은 괴델이 순환형 시간여행의 가능성의 근거를 제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괴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는 자신이 증명한 것은 순환형 시간여행의 가능성이 아니라, 시간은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해요.

괴델은 왜 순환형 시간여행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놓고는, 시간이 일종의 관념일 뿐이라고 했을까요? 아마 괴델은 순환형 시간여행이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을 거예요. 시간 변수인 t를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이 포스트는 『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김필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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