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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간단한 것이 답이다

인문 교양 읽기/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

by 스마트북스 2021. 2. 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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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면도날

14세기 영국의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오컴의 윌리엄(1280~1349)오컴의 면도날에서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1.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
2.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들이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단순한 이론이 옳을 가능성이 높다.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할 때 보통 천동설과 지동설을 예로 듭니다.
2세기 무렵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우스는 천동설을 정교한 이론으로 만들었어요. 중세 교회는 당연히 천동설을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지구의 중심은 로마이며, 로마의 중심은 바티칸이고, 바티칸의 중심은 교황이고, 따라서 전 우주는 교황을 중심으로 돈다고 믿었어요. 사람들은 1500여 년 동안 천동설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죠. 우리 눈에는 태양이 뜨고 지는 것처럼 보이니,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16세기에 들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와 같은 천문학자들이 지동설을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론이었죠. 지구와 교황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니 말이죠.


단순한 것을 선택하라

오컴의 면도날에 따르면,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설득력 있어요. 오컴의 면도날의 두 번째 원칙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 중에서 가장 단순한 이론이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더 단순한 이론이었어요.
아래의 왼쪽 그림을 볼까요. 지구의 관점에서 본 천체의 운동을 그린 것인데 상당히 복잡합니다. 파란색 지구를 중심으로 노란색 태양은 원운동을 하지만, 다른 행성들은 나선형 비슷하게 복잡한 운동을 해요.
천동설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궤도를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이라는 것을 도입했어요. 원 운동 안에서 또 다른 원운동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지동설을 받아들이면 위 오른쪽 그림처럼 천체의 움직임이 아주 단순해져요. 가운데 노란색 태양을 중심으로 파란색 지구가 원운동을 하고, 다른 행성들도 마찬가지로 회전운동을 하지요. 주전원을 도입하지 않아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앞의 두 그림을 보면 지동설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궤도가 더 단순하고
(물론 궤도를 지하철 노선도처럼 단순화해서 표현한 거라 실제로는 좀 더 복잡해요), 주전원이라는 불필요한 가정을 도입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오컴의 면도날, 즉 어떤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되고, 현상을 설명하는 주장이 여러 개라면 단순한 것을 선택하라는 원칙에 맞는 것이죠.

현실과 신성을 면도날로 자르다

하지만 둘 중 어떤 설명이 더 단순한지 결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예컨대 유신론자들은 인간이 복잡한 조건 속에서 진화했다는 설명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보는 것이 더 단순하다고 주장하고, 무신론자들은 신과 같은 불필요한 가정을 덧붙이지 말라고 하겠죠.
즉 유신론자들은 유신론자대로, 무신론자들은 무신론자대로 자신의 이론이 더 단순하다고 주장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이미 정해놓고, 그 정해진 답에 과학적 근거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컴이 살았던 13~14세기, 로마 교회가 영향력을 잃어가고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신의 존재 규명 논란으로 시끄러웠어요. 그러자
오컴의 윌리엄은 현실과 신성의 세계를 면도날로 잘라버렸어요. 신성의 세계는 신앙에 맡기고, 현실세계는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하자는 것이었죠. 그러면 신성은 과학의 세계로부터 침해받지 않고, 과학자들은 신성 모독, 이단에 대한 걱정 없이 맘껏 연구를 할 수 있죠. 오컴의 면도날은 중세철학이 새로운 길을 찾고, 근대 과학과 철학이 맘껏 움트는 계기 중 하나가 됩니다.

이 포스트는 5분 뚝딱 철학 : 생각의 역사(김필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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