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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설계 시장의 함정

돈 되는 재테크/투자의 심리학

by 스마트북스 2021. 3. 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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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설계, 누구를 위한 시장일까

재무 설계는 198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프랑코 모딜리아니Franco Modigliani생애 주기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생애 주기 가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사람의 소비는 전 생애에 걸쳐 일정하거나 서서히 증감하지만 소득은 중년기에 가장 높고 유년기와 노년기에는 낮은 것이 보통이며, 이 때문에 중년기에는 양의 저축을 유년기와 노년기에는 음의 저축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사람의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소득이 지출보다 많아서 저축이 가능한 양의 저축 기간이 한정되어 있는데, 그 기간이 인생의 중년기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양의 저축 기간인 중년기에 형성된 자산의 잉여분을 음의 저축 기간인 노년기에 나눠서 소비하려면 중년기에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금융회사들이 삶 전체에서 일어나는 결혼이나 주택 구입, 자녀 교육, 퇴직 등의 이벤트들을 생애 주기 가설 위에 수립하고 실현하는 데 그들의 컨설턴트들이 도움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금융회사들이 사람들의 전 생애에 관여하겠다는 것이죠. 결국은 재무 설계를 통해서 개인에게 얻어낼 수 있는 모든 파이를 모조리 먹어 치우겠다는 속셈인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생애 주기 가설이 한국인들의 저축 활동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뚜렷한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금융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세일즈맨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화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금융회사들의 마케팅 덕분에 생애 주기 가설을 기본 바탕으로 한 재무 설계가 이미 자리를 잡아 하나의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퇴직과 은퇴는 다르다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에서의 퇴직, 즉 정년퇴직한 사람을 은퇴자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은퇴자의 연령이 지나칠 정도로 낮아지게 될 뿐만 아니라 정년퇴직 후 제2의 소득원을 찾아 소득 활동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특정 연령60세나 65세 이상을 은퇴자로 정의하는 금융회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단순 고령자와 은퇴자를 같은 사람으로 본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고령자이면서도 노동 현장에서 소득 활동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까지 은퇴자로 정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 연령대 이상이면서 노동 소득이 0인 사람을 은퇴자로 정의하는 금융회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일시적인 실업과 은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1의 소득원에서 제2의 소득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일시적인 공백기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보통 소득 활동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소비 활동만 하면서 여생을 살아가는 것을 은퇴로 정의합니다. 따라서 제1의 소득원뿐만 아니라 제2, 3의 소득원에서의 소득 활동, 즉 모든 소득 활동을 완전히 떠난 상태가 되어야만 비로소 은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정년퇴직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는 개념입니다. 그럼에도 금융회사들은 제1의 소득원에서 물러나 제2의 소득원에서 소득활동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소득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소비 활동만 하면서 살아가는 은퇴 생활의 기간이 점차 길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불안 마케팅

우리가 제1의 소득원에서 물러나게 된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제2의 소득원을 찾아 소득 활동을 계속 유지한다면, 우리의 은퇴는 금융회사들이 주장하는 시기보다 한참 뒤에나 찾아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년기 중 일시적으로 양의 저축 기간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수십억 원이 없어도, 정원 딸린 넓은 집이 없어도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은퇴에 대한 불안감의 상당 부분은 금융회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포스트는 투자의 심리학(구본기 지음)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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