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 씨가 이혼한 이유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저 앞사람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것뿐인데도 꼭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런 이상한 습관을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반드시 자신의 말버릇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온다.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집요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친구들을 돌아본다. 숫자가 아니라 수준을 말이다. 친구들의 수준은 그 사람의 견식, 인생 성취 그리고 눈높이를 말해준다. 당신의 친구 중 한두 명이 이상한 사람이라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친구들이 이상하다면 그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이며, 친구들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둘째, 한 손바닥만으로는 박수를 칠 수 없다. 언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언쟁이 가능한 상대 혹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런 사람 앞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속뜻을 헤아려야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알겠습니다. 제 입장은….”과 같이 말한다. 상대는 당신에게 반응을 얻지 못하면 저절로 풀이 죽을 것이다.
셋째, 언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언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그들은 타인을 부정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가여운 사람들이다. 이는 그들이 인생의 성취를 통해 자아를 증명하는 기회를 상실한 탓이다. 그러니 그들이 당신에게 할 말을 잃게 만든다면, 그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대해주는 것도 좋겠다. 그들 역시 할 말을 잃게 말이다.
마지막으로, 언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게 둔다. 그들이 처음에 부정적인 말을 한 것은, 단지 말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해주면 스스로 당신을 인정하게 된다.
의미 있는 언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누구를 이기고 싶어하든 그 행위 자체가 이미 졌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에서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지 않다. 승패에 대한 집착은 정서적 결여, 성숙하지 못한 지성을 증명할 뿐이다. 자신을 위해 즐거운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인생을 즐기는 방법만 배운다면, 고집을 부리거나 타인에게 뻣뻣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를 갖출 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선량함의 시작은 타인에 대한 존중, 약자에 대한 보호에 있다. 이 사회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사회의 약자에게 아주 작은 선의를 베푸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는 일이다. 쇳덩이처럼 차가운 악행을 본체만체하는 사이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판별능력마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포스트는 『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 않을 때』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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