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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골목 상권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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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골목 상권 망친다?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투는 오래 전부터 비판의 대상이다. 실제로 수많은 대기업들이 분식 사업부터 레스토랑 사업까지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특히 골목 상권 침투에서 가장 앞장서 있는 것이 대기업 프랜차이즈이기에 비난이 집중된다. 그러나 모든 일에 명암이 있는 것처럼, 대형 프랜차이즈도 명과 암이 존재한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좋은 점은 과연 없을까     

라파엘로 공방도 프랜차이즈 방식?

 

프랜차이즈는 본사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체인점을 두고 운영하는 사업방식이다. 요식이나 서비스업의 경우 프랜차이즈는 대량생산의 한 수단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프랜차이즈의 탄생과 확장은 그 업종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 사업체가 다른 직영 체인점이나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세워서, 본점과 동일한 브랜드를 달고 동일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든,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어디서나 본점과 동일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믿고 분점을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식/서비스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대량생산이라고 볼 수 있다.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철저한 품질 관리와 표준화가 필수이다. 그런데 점주와 직원의 역량을 본점만큼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생산과정 및 서비스를 단축하고 표준화한다. 이것은 그 이전과는 다른 생산혁신이었다.
이와 유사한 생산혁신은 16세기 미술계에서도 추구된 바 있다.
바로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하나인 라파엘로 산치오에 의해서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직접 그리거나, 조수 몇 명에게 보조적인 역할만 맡겼기에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없었다.
반면 라파엘로는 많은 조수들을 활용한 공동작업 방식으로 수많은 작품을 찍어냈다. 꼬장꼬장하고 주변 사람들과 매번 트러블을 일으켰던 앞선 두 인물들과 달리, 그는 매우 사교적이고 인기가 많아서 수많은 교회, 왕족, 귀족들이 그의 그림을 소유하기를 원했다. 라파엘로는 밀려드는 주문과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자신의 공방에서 많은 조수들에게 역할을 맡겨 그림을 생산했다. 물론 그가 조수들에게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화면을 구성하고 마무리하는 작업을 했고, 중간 과정을 조수들이 수행했다. 그의 그림 중 상당수가 이런 식으로 탄생했다.
이런 작품들은 라파엘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린 것에 비해서 품질이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정을 관리하고 감독했다는 점만으로 그의 그림이라고 인정하고 만족했다. , 라파엘로가 핵심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의 브랜드를 믿고 인정한 것이다.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득이 되는 일이었다. 라파엘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댄 작품을 소유하려면 엄청나게 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인기가 엄청났기에 돈이 있어도 그림을 얻기 힘들었다. 그러나 공방 방식을 따르면 돈을 덜 들이고도 다른 화가의 작품들보다 뛰어난 거장의 그림을 소유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라파엘로와 그의 그림은 일종의 프랜차이즈 방식의 생산품이라 볼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의 상향평준화

골목 상권 가게들의 품질과 서비스가 좋지 못할 때, 한 업종에서 가장 잘되는 가게(본점)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가맹점들이 골목에 들어왔다. 평균화와 표준화로 변동성을 크게 줄였기에 본점에 준하는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그들은 골목 상권의 기존 가게들보다 상품과 서비스 등에서 평균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러한 평균적인 격차가 소비자들로 하여금 프랜차이즈를 이용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어느 분점을 가도 비슷한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므로 소비 결정이 실패할 확률이 크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대기업과 대형 프랜차이즈가 골목을 빠른 속도로 점령한 핵심 요인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개인이 경쟁역량을 갖출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표준화와 품질관리를 앞세운 우월한 업체에 뒤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많은 가게들이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의 경쟁에서 패배하며 가맹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따라서 표준화된 대량생산품보다 못한 상품을 생산하던 가게들의 수준도 높아질 수 있었다.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프랜차이즈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당시에는 브랜드만 뒷받침이 되면 일정 이상은 잘 굴러갔다.

프랜차이즈, 과거의 영광

그러나 지금, 그러한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잘 굴러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최소한 과거만 못하다이다. 프랜차이즈가 확장되면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과거만큼의 장점도 없어진 것이다. 파리바게트의 경우 2012년에 매장 수가 3,000개를 돌파했고 어디서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분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딸은 매장 수가 800개에 달하며 죠스떡볶이도 300여 개가 넘는다. 과연 소비자들이 이런 곳들을 초창기처럼 특별하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요즘은 표준화된 프랜차이즈가 이처럼 소비상품의 평균이 되고 흔해졌기에,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경쟁력, 시장 우위가 전성기였던 1990년대만 못하다.
2010년대인 현재 골목의 가게들이 경쟁에서 밀리는 원인을 대기업과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찾기는 어렵다. 상품의 질이나 서비스가 대량생산을 하는 프랜차이즈만도 못하거나, 비슷하면서 가격은 더 비싸기 때문이다. 평균보다 낮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길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골목 가게들은 과거에 비해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 대기업 프랜차이즈보다 우위에 있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최근 10년 동안 가장 빠르게 저변이 확산된 커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아예 상권이 죽은 지역이 아닌 이상에야, 동네마다 커피 맛이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나은 곳이 한둘쯤은 있을 것이다. 빵집도 더 좋은 재료와 기술로 훌륭한 빵을 만들어내는 곳이 크게 늘어났다.
이제 프랜차이즈가 가지는 우위란 비싼 임대료를 견딜 체력이 더 된다는 점, 점주의 수고를 줄여준다는 점, 그리고 익숙함으로 일정 수준만 충족하면 되는 소비자층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프랜차이즈는 절대악인가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대기업/대형 프랜차이즈를 절대악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프랜차이즈의 등장 덕분에 소비상품의 평균적인 질이 빠르게 높아졌으며 저변이 확대되었다. 덕분에 양질의 동네 가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것은 득이라 할 수 있다.
분명 대형 프랜차이즈는 자본과 마케팅에서 일개 작은 사업자보다 유리하다. 대신 규모가 크기에 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며 유연하지 못하다. 만약 프랜차이즈보다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 이것은 사업의 경쟁력 자체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혹자는 골목 상권의 가게들이 프랜차이즈로 빠르게 바뀌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가게들이 그저 영세하다는 이유만으로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프랜차이즈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은 가맹점주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는 직접 자영업을 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편하다. 제품 개발, 가격 책정, 인테리어 구성, 홍보, 재료 확보와 주문 등에서 자유롭다. 독립 사업자는 이 모든 것을 고민하고 직접 결정해야 한다. 심지어 제대로 된 본사는 입지와 상권 분석까지 해준다. 진입장벽이 낮아서 특별한 아이디어나 운영능력 없이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만약 가맹점주가 되려는 사람들이 직접 창업했다면 과연 오래갈 수 있었을까?

골목 가게의 두 가지 선택지

분명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대형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망친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프랜차이즈는 골목 상권의 평균적인 질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프랜차이즈로 인해 재편된 지금의 골목 상권은 두 가지 길밖에 없다.
평균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되거나, 철저한 차별화와 유연성으로 작지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게. 적어도 지금 각 골목에서 우위를 점한 가게들은 프랜차이즈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추구함으로써 활로를 찾아가고 있다. 똑같은 방법으로 해서는 규모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이 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가게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포스트는 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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