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 다녀온 후, 실리콘밸리의 직장 동료에게 4차 산업혁명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응? 산업혁명이 네 번 있었다고? 내가 알기로는 한 번뿐인데?”
우리나라는 단연 기술 선진국이다. 반도체, 가전제품, TV 등을 만드는 기술력은 실리콘밸리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선두에 서 있지 않은 기술도 많다. 실리콘밸리가 주도하고 있는 기술로는 인공지능, 블록체인, 공유 경제, 소셜 네트워크 등이 있다. 우리는 이런 기술들을 묶어 ‘4차 산업혁명 기술’이라 부른다.
그런데 실제로 실리콘밸리 회사가 시작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뛰어난 기술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구글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고안한 검색 기술로 회사를 세웠다. 그렇지만 페이스북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PHP 웹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장난 같은 웹사이트에 불과했다. 트위터는 많은 프로그래밍 교육 과정에서 연습 문제로 쓸 만큼 만들기 쉬운 앱이다. 에어비앤비, 우버에도 특별한 기술은 없다.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기술을 쓰는 것도 아니다. 웬만한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앱으로 시작했다.
그들은 어떻게 별것 아닌 기술로 IT 및 관련 업계에서 세계를 제패했을까? 역시 아이디어가 답일까? 사실, 그것도 정답은 아니다.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품을 만든 회사가 전 세계에 수도 없이 많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는 바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고객에게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편리한 경험을 제공한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을 시작으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테슬라,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회사들은 그때까지 불가능했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물론 새로운 기술들이 큰 역할을 했지만, 실리콘밸리 회사들에게 기술은 도구일 뿐 추구의 대상이 아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오직 자신의 제품을 발전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 어떤 신기술이 나오든, 자사 제품을 만들거나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면 활용하고 아니면 무시한다. 그렇다 보니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기업 중 관련 기업 일부만 인공지능을 연구하여 발전시킨다. 또한 제품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 힘든 블록체인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기술은 단연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중앙 서버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바꿀 수도 있고, 전 세계 인공지능이 서로 대화하게 할 수도 있다.
빅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빅데이터 처리는 세상을 바꾸었다. 많은 기업이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인류는 이제껏 처리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회사도 빅데이터 기술을 독점하여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빅데이터 기술이 이미 오픈소스 형태로 모두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기술은 조용히 전 세계 모든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었지만, 오픈소스인 빅데이터 기술을 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빅데이터로 무엇을 할지가 중요하다.
블록체인은 태생부터 오픈소스Open Source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독점할 수도 없고, 블록체인을 잘한다고 큰돈을 벌 수도 없다. 블록체인을 이용하여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회를 줄 것이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블록체인에 별 관심이 없다. 블록체인이 돈을 벌어들이거나 제품의 사용자 경험을 개선해주는 기술이 아닌, 기업이 가진 중앙집중적 기득권을 해체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한다면, 그것은 생존과 부의 창출이 아니라 오히려 부가 독점되는 구조를 막고 사용자들과 이익을 공유하여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도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 자체가 기업의 생존을 보장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의 경쟁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점이 정말 많다. 갤럭시는 세계 1위 기술 기업인 삼성의 기술 집약체다. 반면 아이폰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집약한 제품이 아니다. 카메라 화소 수, CPU 속도, 심지어 OS와 인공지능 품질도 갤럭시에 뒤진다.
아이폰은 태생부터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것은 기술 집약체가 아니라, 이미 있는 휴대폰과 아이팟, 인터넷 브라우저를 합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기계였다.
그래서 애플은 사용자 경험을 더 높이는 기술이 아니면 아이폰에 넣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갤럭시가 동공 스크롤을 비롯한 수십 가지 기술을 구현한 데 반해 아이폰은 불필요한 기술은 과감히 버린다. 애플의 혁신은 사용자 경험의 혁신이지, 기술의 혁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만드는 것은 이제껏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롭고, 신기하고, 삶을 편하게 하는 선물 같은 경험이다.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개인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회사에서 마음대로 써도 되고 회사 컴퓨터를 집에 가져가서 일해도 된다. 또한 모든 소스 코드에 모든 엔지니어가 접근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신 기술의 흐름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기술을 사용하면 더 쉽고 빠르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제조업에서는 기술이 중요하다. 무한 경쟁 세계인 레드오션에서는 자사 제품을 다른 제품과 차별화하는 것이 기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새로운 기술에 집중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새로운 기술들을 통칭할 개념으로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가진 것은 세계 최고의 기술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즐겁고 편하게 하는 신기한 제품들이다. 그들에게 기술은 다양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유되어야 할 도구다. 그래서 기술을 모두가 쓸 수 있는 오픈소스라는 도구 상자에 넣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각 회사는 저마다의 미션에 따라 인류의 생활을 재미있고 편하게 할 선물 같은 제품을 만든다. _Will(유호현)
이 포스트는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회사는 뭐가 다를까』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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