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접하며 내가 첫 번째로 느낀 것은 현장 직원의 소중함이다.
돼지는 공장에서 조립되는 전자제품 같은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이다. 그만큼 돼지를 돌보는 현장 직원들의 세세한 돌봄과 관심이 중요하다.
농장이 살아남으려면 비용을 절감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인적 구조조정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현장 직원들의 급여는 그대로 유지하거나 필요한 경우 인상하였다. 대신 아직 근무 중이던 전임 농장 대표같은 관리직 직원의 급여는 대폭 삭감했다. 농장 대표로서 받는 나의급여 역시 농장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농장의 입사제의를 받고 이직을 고민하던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농장에 남아줄 것을 간청했다. 때로는 직원의 집을 방문하여 차려준 술상을 마주하고 농장의 앞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내 진심이 통했을까? 고맙게도 직원들은 사직하지 않고 어려운 농장이 정상화되도록 힘을 보태주었다.
…
하루하루 현장을 접하니 농장의 실제 운영 상황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농장 대표 직함을 떠나서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현장 직원들이 돼지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온종일 낮 근무시간에는 돼지를 돌보고, 매주 이른 새벽 돼지출하가 있는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잠을 설쳐가며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체력에 무리가 생긴다. 게다가 각종 비품 구입 같은 일로 현장직원이 농장 밖을 드나들면 돼지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 힘들다. 나는 농장업무를 새로 교통 정리했다. 나를 포함한 관리직 직원들이 새벽 출하를 담당하고 각종 비품 구입 같은 잡무를 맡도록 조치했다.
이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렀을까. 농장의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지고 농장 직원들의 팀워크도 살아났다.
나는 농장의 위기상황과 경영진 교체를 계기로 우리 농장이 새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농장을 이끌고 싶었다.
우선 인사 원칙에 관한 틀을 잡고 싶었다. 주주들이 농장의 법적 주인일지는 모르지만 내 눈에 비친 현장 직원들의 농장 경영에 대한 기여는 일반 제조업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특히 지금 근무하는 직원들은 어려운 시절을 함께하고 있는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가? 나는 농장 직원들을 파트너로 대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새 출발에 걸맞은 새로운 인사 원칙을 도입하기로 했다. 우선 우리 농장의 고용 형태를 ‘정규직’을 원칙으로 했다. 신용불량자로 입사한 농장 직원의 경우, 회사가 채무를 우선 변제하여 신용을 원상회복시킨 뒤 정규직원으로 전환했다.
‘직원은 회사의 파트너’이므로 회사 경영 상태를 직원들에게도 수시로 공개했다. 우리 농장은 결산을 포함한 농장의 재무 내역을 모든 직원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매년 결산 후 실현한 수익의 일정 부분은 직원들의 성과 보상으로 지급하는 원칙을 도입했다. 스톡옵션 제도도 도입하여 농장의 장기적 성장에 기여하는 직원들은 농장의 가치를 장기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성과 보상 체계를 명문화했다.
직원들의 가족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다. 돼지농장은 돼지가 잘 자라도록 농장 업무와 작업 시간 역시 돼지 중심으로 흘러간다. 일반 제조업처럼 나인 투 파이브, 사람이 정한 시간대로 운영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이 생기면 주말에도 농장에 나와야 하고, 명절 연휴 기간에도 누군가는 나와서 돼지를 보살펴야 한다. 그만큼 직원 가족의 희생이 따르는 것이다. 나는 우리 농장의 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들의 대학 학비를 농장에서 전액 지급하는 보상 체계를 도입했다. 그리고 매년 말 우리 농장의 모든 직원과 가족을 좋은 식당에 초대하여 감사를 표하는 연말 행사도 정례화했다.
기왕 농장 대표로 축산인이 된 이상, 우리 농장을 좋은 농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좋은 농장이란 무엇일까?’ 나는 수시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광의의 개념에서 농축산업은 먹거리 산업이다. 농사를 잘 짓고 가축을 잘 키워야 생산자는 소비자의 식탁을 안전하고 풍성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농장이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좋은 돼지농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가 주목한 것은 우리 농장이 위치한 홍성군 결성면 우리 마을이었다. 돼지농장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축을 키우는 농장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없앨 수는 없다. 깨끗한 공기, 좋은 환경은 마을 구성원 모두가 누려야 하는 일종의 공공재이다. 우리 농장은 돼지를 키우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환경적으로 우리 마을에 폐를 끼치고 있다. 주변 환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마을과 상생하는 농장’은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농장’에 이어 내 마음속에 각인된 좋은 농장의 미래상이다.
이 포스트는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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