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시험적으로 방목해서 키워 보신다면서요? 방목하여 키운 돼지는 일반 사육 돼지보다 사람에게 더 안전하고 맛있는 고기가 될 겁니다….”
방목하는 돼지가 있다는 말에 친환경 농축산업을 지지하는 분이 뿌듯한 듯 내게 격려의 말을 보냈다.
나는 돌연 이런 질문을 했다.
“방목한 돼지가 먹거리로서 더 안전할까요?”
“물론이지요,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에서 독성물질이 분비되지 않습니까? 동물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라난 돼지가 더 좋을 겁니다.”
그가 대답했다.
“아, 네… 그럴 수 있겠군요. 그런데 방목을 하면 돼지의 운동량이 많아지지요. 운동을 많이 하면 돼지 근육량이 늘어서 고기가 질겨지고 맛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
농장에서 방목을 한다고 돼지를 마냥 굶길 수는 없으니 방목장 한편에 항상 사료를 갖다놓았다. 그랬더니 돼지는 맛난 사료를 먹고 방목장 내에서 유유자적했다. 돼지가 정말 자유를 좋아한다면 방목장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탈출을 시도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우려했던 사태, 즉 돼지가 방목장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유로이 마을 논밭을 뛰어다니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일반 돼지가 방목한 돼지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독성물질이 분비되는 것일까? 차분히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돼지가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서 농장의 돼지는 도축장으로 이동 → 도살 → 가공의 단계를 거친다.
사실 ‘먹거리 안전’을 주제로 한 오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나는 어떤 강의를 들으러 가서, 우리나라 돼지고기에는 항생제 덩어리가 뭉쳐 있으니, 우리 돼지고기 대신에 안전한 유럽산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강사가 여담으로 한 말이다. ‘항생제 덩어리!’ 이 말에 모두들 섬뜩하며 공감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돼지를 키우면서 내가 알게 된 ‘항생제 덩어리’의 진실은 이렇다.
식품 안전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키우는 가축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다. 실제로 유럽의 축산 선진국들은 ‘동물의 행복’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동물복지형’ 돼지 사육을 추진하고 있다. 동물복지를 시행하려면 기존의 농장 설비를 대폭 교체해야하는 등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만큼 축산물 생산 비용이 올라가고 축산물 가격도 오를 것이다. 하지만 유럽은 동물복지를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동물의 행복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그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로의 불신을 지우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가축을 배려하며 머리를 맞대는 때가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 포스트는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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