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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난다 대박 신화의 숨은 성공 배경 : 덕업일치도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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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조사/현지화 안 한 이유

스타일난다 김소희 전 대표는 스타일난다를 이끌 당시 시장조사나 데이터를 통한 분석 등은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죠. 언제나 트렌드의 첨단에 있었기에,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소비자들도 좋아했습니다. 해외 진출 브랜드들이 반드시 하는 시장조사와 현지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해외 소비자들도 애초부터 그녀의 스타일을 좋아하고 추종했기에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김 대표는 가장 좋아하는 일과 가장 잘하는 일이 일치합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시장 전체를 놓고 봐서도 잘하는 수준이면, 경제성이 생깁니다. 만약 그 시장이 규모도 크다면 그 시장에서 빛나는 스타가 될 수 있죠.
그런데 김 대표는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장 잘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에 시장이 크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것, 이것이 바로 재능입니다. 김소희 대표는 패션과 스타일에서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기업가들이 하는 일들을 하지 않고도 성공한 것은 그만큼 대단한 재능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그러나 그 재능 또한 극대화될 수 있는 시기를 만났기 때문에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난 것입니다.

동대문 의류시장과 밀리오레

출처 : 중구문화관광홈페이지

연간 800만 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적 관광지 동대문 패션타운은 스타일난다의 커다란 성공 배경입니다.
동대문 의류시장은 기성복 시장에서 디자인생산판매를 모두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주문과 요청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었죠. 동대문 의류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입니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패션을 공부한 대졸자와 패션업계의 젊은 인력들이 동대문으로 왔습니다. 덕분에 동대문 의류시장은 디자인과 기획 차원에서 급격하게 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또 외환위기로 인한 환율상승이 수출산업에는 기회가 되어 동대문은 디자인생산판매가 모두 한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통합구조에 고환율로 인한 저렴한 수출가격, 훌륭한 품질로 해외 의류시장에서 주목받는 대형 클러스터로 변모합니다.
한편 도매시장으로 쓰려고 했던 한 신축건물이 의류 소매를 위한 건물로 목적을 바꾸어 1998년에 개장했습니다. 바로 동대문 밀리오레입니다. 대형 패션몰 열풍을 일으키며 국내 패션 유통시장을 바꾸어 놓은 혁명이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밀리오레의 개장 이후 동대문 시장은 내수 도매 중심에서 도소매와 내수, 수출까지 아우르는 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밀리오레가 오픈하고, 동대문이 일반 소비자에게도 문을 열기 시작한 1998년에 김 대표는 15세였습니다. 평소 옷을 좋아하고 부모님을 따라 동대문에 가던 김 대표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소비자층에게 어울리는 패션감각을 익히기에 가장 좋은 상황이었던 겁니다.

인터넷 시대, 벤처 붐

1990년대 말 시작한 벤처 붐은 스타일난다를 오픈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김 대표가 처음 옷을 팔았던 옥션의 국내 서비스 시작 시기는 1998, 스타일난다뿐만 아니라 이후 등장할 수많은 온라인 쇼핑몰들의 플랫폼이 될 카페242000년에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온라인 쇼핑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시기인 셈이죠.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1990년대의 시대적 환경은 김 대표가 옷을 파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인프라를 갖추어가고 있었습니다.
원래 그녀가 하고 싶었던 것은 지하상가에서 옷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지하상가에서 옷을 팔아도 잘했겠지만, 그랬다면 룩북 형식을 갖춘 인터넷 쇼핑몰은 없었을 테니 스타일난다의 대성공을 이끈 3CE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매출도 한참 못 미쳤을 것이고요.

K-뷰티 붐

2000년대 후반 마스크팩에서 색조화장품으로 이어지는 K-뷰티 붐 또한 스타일난다의 대성공을 이끈 3CE의 인프라가 됩니다. 색조화장품은 외국인 관광객, 그중에서도 유커들이 가장 열심히 찾아다니는 품목이 되었습니다.중국에서 화장에 관심이 많은 젊은 소비자들은 한국의 색조 화장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스타일난다가 색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시기에 주변 국가의 경제/문화적 발전상황에 따라 거대한 시장이 열린 것입니다.
김소희 대표는 그저 스타일난다의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이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으로 만들어 팔았을 뿐이지만, 이 결정이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열광하는 선택이 되었죠.

재능이 시대를 만나면 생기는 일

출처 : 스타일난다 김소희 전 대표 인스타그램

스타일난다가 거둔 대단한 성공을 살펴보면, 김소희 대표가 자란 시대적 환경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온라인으로 옷을 팔기에 여러모로 최적의 조건이 되어주었고, 소비자들의 요청에 따라 무언가를 팔기 시작할 때마다 얼마 되지 않아 그에 맞는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의 재능과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정말 잘 만났기에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김 대표가 2005년이 아니라 1995, 혹은 2015년에 사업을 시작했다면, 아무리 훌륭한 재능이 있더라도 성공의 규모는 훨씬 더 작은 수준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스타일난다의 성공이 운이라고?

출처 : : 스타일난다 김소희 전 대표 인스타그램

스타일난다의 성공을 그저 운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건 부당한 평가입니다. 김 대표는 20대 초반이던 2000년대 중반에 사업을 시작해 14년 동안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했고 사업을 꾸준히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안정적으로 사업을 성장시키고 다시 재투자하여 확장해나가는 모습은 마치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어떤 성공을 거두었을 때, 사람들은 그 성공이 온전히 자신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타일난다의 성공처럼 재능과 운이 모두 극적인 시너지를 일으켜 잘 풀린 상황이라면,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능력이라고 떠벌리고 과시할 만하지만 김소희 대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2016년의 인터뷰 기사에서 김 대표는 자신의 힘이나 전략 때문에 거둔 성과가 아니니, 성공이란 말과 목표란 말을 자제해달라고 합니다. 이는 그녀가 누구보다도 자신의 성공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어쩌면 그런 통찰력이 14년 동안 사업을 큰 위기 없이 이끌어온 원동력일지도 모릅니다.
김소희 대표는 나이 어린 여자 대표라고 무시를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통찰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도 더 훌륭한 기업가이며, 큰 성공을 누릴 만한 사람입니다.

이 포스트는 멀티팩터 _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김영준)의 내용을 바탕으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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