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힘으로 이기면 불공정?
우리는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우위를 잡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봅니다. 자본의 힘으로 경쟁하는 것을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은 자본의 힘을 통한 경쟁을 ‘기울어진 경기장’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하게 잘못된 인식입니다.
스포츠를 살펴볼까요. 육상 같은 스포츠는 재능과 연습으로 겨루지만 첨단 기술이 적용된 러닝화나 운동복 등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팀 스포츠의 경우 운과 팀워크, 자본 등이 매우 중요한 경쟁 요소로 떠오르며 프로 스포츠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집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도 나온 바 있는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에서는 메이저리그 팀 간의 자본의 차이를 엄연히 경쟁의 한 요소로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가는 방법을 다룹니다. 이처럼 재미와 인기를 위해서 팀 간의 차이를 보정하는 프로 스포츠에서조차 자본은 매우 명확한 경쟁자원이자 요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익과 생존이 목표인 비즈니스에서 ‘노력과 재능, 열정만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외치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경쟁자원의 중요성
비즈니스에서 경쟁자원의 중요성은 나이키가 잘 증명해줍니다. 나이키의 공동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에서 필 나이트와 동료들이 보인 신발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 열정과 노력만으로 나이키라는 기업이 탄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나이키의 또 다른 공동창업자는 오리건대학의 육상 코치인 빌 바우어만입니다. 그는 필 나이트의 은사이자 수많은 국가대표 육상선수를 코칭한 인물입니다. 애초에 오니츠카 타이거가 아무것도 없던 20대의 필 나이트에게 미국 지역 판매권을 허락한 것은 빌 바우어만 코치의 명성과 영향력 덕분이었습니다.
나이키는 태생부터 육상 관계자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경영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필 나이트 또한 열정밖에 없던 맨손의 창업가가 아닙니다. 그는 회계법인인 PwC에서 일한 회계사이자 포틀랜드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던 교수였습니다. 이렇게 탄탄한 수입원이 있었기에 블루리본 스포츠 나이키의 전신를 창업하고도 6년 동안 급여를 받지 않았을 뿐더러 부족한 자금을 채워넣을 수 있었죠. 만약 그가 자금 기반이 취약하고 블루리본 스포츠 사업에 전념했던 상황이라면 나이키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나이키라는 글로벌 기업도 초기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경쟁자원을 아낌없이 활용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죠.
신발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기반이 되었고, 빌 바우어만이라는 스타 코치를 사업으로 끌어들여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으며, 안정된 직장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사업을 운영해서 적자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위기를 헤쳐나갔습니다. 더불어 적절히 따라준 행운들은 사업을 크게 확장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필 나이트의 신발에 대한 열정은 정말 놀랍고 배울 만한 것이지만, 나이키가 그 열정만으로 탄생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본도 인맥도 경쟁자원
자본은 당당한 경쟁자원의 한 요소이자 경쟁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자본이 많다면 그만큼 경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본은 공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업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변동성을 견딜 수 있는 안정성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강점을 가집니다. 한편 많은 자본으로 경쟁을 한다면, 그만큼 리스크에 노출된 자본도 많기에 손실도 비례해서 늘어납니다. 이처럼 자본은 약속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연히 경쟁자원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지요.
인적 네트워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인맥이란 표현을 종종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지만, 비즈니스에서 인맥은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원입니다. 비즈니스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힘이 되죠.
실력과 아이템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실리콘밸리조차도 인적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유진 클라이너가 제시한 벤처투자의 법칙은 ‘사람을 보고 투자하라’였습니다. 스탠퍼드대학 출신들이 실리콘밸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그 대학 출신들이 이미 실리콘밸리에서 수많은 기업을 차리고 벤처캐피탈에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스탠퍼드라는 학력과 그것이 주는 인적 네트워크는 이미 성공한 다양한 인사들에게 노출되기 쉽게 만들어주고, 그것이 더 많은 투자금과 사업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인적 네트워크의 측면에서 학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명문대일수록 다양한 분야에 선배들이 진출해 있으며 발 닿는 범위도 넓습니다. 카이스트 출신자들이 벤처/스타트업에 많이 포진해 있는 것과, 카이스트를 나와 창업을 하는 것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시각이죠.
SNS 영향력도 경쟁자원
SNS의 등장이 비즈니스에서 유의미한 것도 학연, 혈연, 지연을 넘어선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블로그에서건, 페이스북에서건, 인스타그램에서건 당신이 무언가 두각을 드러낸다면, 당신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여기서 많은 연결(노드)을 가진 사람과 연결되어 있을수록 확산과 파급력도 커지죠.
심지어는 외모마저도 경쟁자원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에 소개되는 떠오르는 기업의 대표들이 젊고 매력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외모를 가진 경우가 적다는 것은 함의하는 바가 큽니다.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들은 외모에서 나오는 호감을 잘 활용하여 비즈니스로 발전시킨 훌륭한 사례라고 볼 수 있죠.
맨손 창업, 환상을 버릴 것
창고에서 창업했다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며, 실제로 창고에서 창업한 것으로 알려진 다수의 기업은 창고에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경쟁자원에 속하는 인적 네트워크나 자본 등의 요소를 언제부터, 그리고 왜 불공정한 것으로 취급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불리하다고 해서 불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으며, 내가 유리하다고 그 상황이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성공에 영향을 주며, 운이 결과를 만듭니다. 노력도, 실력 혹은 재능도, 자본과 인적 네트워크, 외모 등도 모두 경쟁에 필요한 자원입니다. 노력 만능주의가 나쁜 것은 다른 요소를 배제한 환상에 빠지게 하여 결과적으로 성공에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총력전입니다. 가진 자원을 모두 활용해야만 성과를 내고 성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멀티팩터 _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 (김영준)의 내용을 바탕으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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