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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통일 진나라 막강 군대의 비밀 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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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통치철학

훗날의 진시황, 진왕 정은 약관 20세에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선조들이 추진하였던 부국강병책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진나라의 부국강병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법치주의였습니다.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오면서 중원의 한, 위, 조나라에는 개혁사상을 가진 수많은 학자들이 등장했으나 이들의 개혁사상은 그곳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습니다. 반면 진나라는 이들을 대거 수용하였고, 특히 BC 4세기 중엽에 위나라 사람이었던 상앙을 중용하여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상앙은 새로운 토지, 조세, 징병제도를 만들고 법치주의를 통해 부국강병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또한 상앙은 국가를 법에 따른 메뉴얼로 통치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상앙은 백성들에게 땅을 주어 토지를 경작케 하고, ‘호’ 단위로 가구를 분할하고, 가구당 병사 한 명을 차출하는 방식으로 군사력을 키웠죠. 상앙의 이런 개혁은 서쪽 변방의 이류 국가인 진나라를 중원을 위협하는 군사대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진왕 정은 상앙이 수립한 법치의 원칙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켰고, 특히 군대 육성에 힘썼습니다.

진나라의 강력한 법치주의를 통한 국가 경영 방식은 군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진의 병사는 전투에서의 공적에 따라 그에 걸맞은 상과 작위를 받았다. 전투에서 공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왕족이라도 가차 없이 처단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진나라 병사들은 전투에서 끝까지 적을 추격해 섬멸을 시도했고, 무조건 적의 머리를 베는 수대로 진급할 수 있었습니다.

진나라는 특히 외국인 인재등용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외국인 인재등용을 통해 치열한 첩보전의 인맥라인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왕 정의 통치철학은 ‘국가 경영에서 이상주의는 금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인 시스템 정비로 군의 조직력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노궁, 혁신적인 신무기

진나라 무기의 핵심은 ‘노궁’이라 불렸던 석궁입니다. 활시위가 거의 60센티미터까지 당겨졌던 진나라의 석궁은 같은 시기, 유럽식 석궁에 비해 훨씬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죠. 특히 화살은 철로 된 철심이었습니다. 철이 풍부한 진나라만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 철심 화살은 노궁으로 쏠 경우 최대 400미터까지 날아갔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부품의 규격화였습니다. 이로 인해 진나라 군대는 늘 여분의 부품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고장 난 병기도 신속하게 수리할 수 있었죠.

노궁을 이용한 진나라의 전술도 무시무시했습니다. 세 명이 한 조로 교대로 발사하며 스텝바이스텝으로 전진하는 전술이었습니다. 석궁을 연속발사하여 계속 적을 압박하며 진격로를 열면 후방의 전차와 보병이 쇄도해 들어가는 매우 공격적인 전술이었습니다.

 

철제 무기와 대등한 청동 검

당시 진나라 군대의 검은 청동 검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철제 검에게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지만, 진나라 청동 검의 경우 동과 주석의 비율을 적절히 섞고, 심지어 크롬 도금이 되어 있어서 철제 무기와 대등한 전투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다만, 철광석의 매장량이 훨씬 풍부했기 때문에 한나라 이후부터 철이 무기의 주재료로 쓰입니다.

전차, 최정예 돌파부대

당시 진나라에 기병은 거의 없었고 말에 수레를 연결한 전차가 주력 기동무기였습니다. 전차는 당시에 최정예 돌파부대로 평가되었습니다. 수레에는 보통 기수와 궁수가 탑승했고 때로는 창병이 함께 타기도 했습니다. 궁수는 노궁과 활을 사용했고, 창병은 ‘과’라는 꺾쇠모양의 창을 이용해 상대방 전차에서 적병을 걸어 떨어뜨렸습니다.

하지만 전차는 말에 비해 기동력과 범용성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특히 기동로의 환경에 따라 이동의 제약이 심했죠. 말을 타고 가면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지형도 전차는 이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병마용출토 당시 말 모형의 발견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중앙아시아에서 들여온 말로 추정되는데, 진나라 군대의 말은 전차를 끄는 힘과 지구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 진나라 군대 주력병기

일반 병사들은 ‘피’라는 창을 썼습니다. ‘피’는 창끝이 양날이어서 찌르고 베는 것이 모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와 ‘피’ 모두의 장점을 가진 ‘극’이 등장합니다. ‘극’은 진나라 군대의 주력 병기로 급부상했고, 이로써 보병도 기병에게 제한적이나마 대처를 할 수 있게 되었죠.

개갑, 중국 갑옷에 큰 영향을 미치다

진나라 병사들은 청동과 가죽이 혼합된 ‘개갑’이라는 갑옷과 투구를 착용했습니다. 가죽과 청동 조각을 이어 만든 개갑은 이후 중국의 갑옷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병마용에서 출토된 개갑은 돌로 만들어진 ‘석개갑’이었으나 이는 실전에서 쓰이진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량생산과 표준화

진나라가 중국 천하를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앞선 테크놀로지에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철공기술로서, 주물 방식으로 무기를 대량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물이란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생산하는 방식으로 진나라는 BC200년이란 고대에 이미 대량생산을 시작한 것입니다. 전쟁이 항상 기술혁명을 가져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새로운 소재를 새로운 제작 방식에 적용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또 표준화로 대량생산의 효과를 배가시켰습니다. 이는 당연히 진나라를 중국 최강의 군대로 만들었고, 전쟁의 승리로 귀결될 수 있었습니다.

이 포스트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이세환 기자의 밀리터리 세계사 1. 고대편』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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