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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와 혁신으로 1등을 차지한 후발기업들

경제상식 경제공부/포스트 한일경제전쟁

by 스마트북스 2020. 9. 2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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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할까 차별화할까

후발주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추격입니다. 선발자가 개척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선발자가 놓친 부분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고한 브랜드 우위가 있는 1등을 넘어서는 것은 잘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어렵죠.
두 번째 선택지는 차별화입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며, 따라하기보다는 우회하여 1등을 따돌리는 방법입니다.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든 다이슨, 평범한 일반인들의 운동화를 내세운 뉴발란스 같은 기업들이 선택한 전략이기도 하죠.
차별화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므로 중소기업들이 선택하기 어려운 길입니다. 일본의 성공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중 어쩔 수 없이, ‘편한 길이 없어서 거칠고 험한 비포장도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던 후발주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아이야 _ 식품가공용 말차로 기술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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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이치현에 있는 니시오시는 말차 산지입니다. 차 재배에 적합한 토질에다 화강석이 풍부해 말차를 가는 맷돌도 발달했습니다. 나고야라는 거대 소비시장을 배후에 두고 있어 말차 거래의 중심지가 되었죠. 그러나 니시오의 말차는 교토의 우지차에 비하면 비주류로 여겨집니다. 우지차는 시즈오카 녹차, 사이타마 사야마 차와 함께 일본 3대 차로 손꼽히죠. 우지차를 본차本茶, 나머지는 비차非茶라고 부를 정도로 음용차 시장에서 우지차의 경쟁력은 막강했습니다.
니시오의 아이야는 익숙한 음용차 시장을 떠나 식품가공용 차 산업을 시작했습니다. 니시오의 말차 생산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화강석 맷돌로 곱게 차를 가는 공정을 자동화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곱게 분쇄하는 전통은 계승해 기계화 후에도 맷돌 한 대로 한 시간당 40밖에 생산하지 못합니다. 현재는 맷돌 대수를 1,200대까지 늘렸고 말차 장인 6명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말차는 열을 받으면 갈색으로 변색됩니다. 이는 말차 가공식품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아이야는 전통을 지키되, 기술혁신도 게을리하지 않고 말차에 특수한 기름성분을 순식간에 입히는 기술을 개발해 변색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순녹색의 말차 크래커나 케이크의 일종인 바움쿠헨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이야의 혁신 덕분입니다. 아이야는 식품가공용 말차 부문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90%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으며, 니시오의 말차는 비차라는 설움을 딛고 식품용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후루야금속 _ 특수금속 가공업으로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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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야금속은 1968년 귀금속 가공업체로 창업했습니다. 일본에서 귀금속 가공업은 역사가 오래된 업종입니다. 사치품이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었고, 우리나라의 육의전처럼 나라의 승인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었죠. 에도 시대에 막부로부터 특권을 받은 도쿠리쿠 본점이나 메이지 시대 환전상으로 시작한 다나카귀금속처럼 오래된 업체들이 귀금속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귀금속 분야에서는 경쟁이 어렵다고 생각한 후루야는 산업용 귀금속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귀금속을 녹이는 기술을 활용하여 이리듐이라는 특수금속 가공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리듐은 원자번호 77번의 희소금속입니다. 녹는점이 2,454°C이며 산이나 알칼리에도 잘 녹지 않아 액화하려면 몇 주가 걸렸는데, 후루야는 이를 단 며칠로 단축시켰습니다.
이러한 후루야의 우회전략은 휴대폰과 OLED 산업이 성장하면서 빛을 보았습니다. 휴대폰의 전파 노이즈를 제거하는 필터의 원료로 이리듐이 사용되었고, 전기가 통하면 빛을 내는 OLED의 발광재도 고순도 이리듐 화합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현재 후루야는 산업용 이리듐 부문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LG전자, 중국 최대의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와 같은 글로벌 기업과 거래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메이다이 _ 질긴 섬유 개발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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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오카야마현의 쿠라시키 지역에는 섬유가공업이 번성했습니다. 메이다이는 1963년 쿠라시키에서 다른 업체가 버린 기계를 주워 와 섬유가공을 시작한 후발주자였습니다. 창업 초기, 다른 업체들이 하기 싫어하는 소규모 발주를 받아서 했지만, 수요가 들쑥날쑥해서 경영이 불안했죠. 메이다이는 의류용 섬유에서는 기존 업체들의 뒤치다꺼리밖에 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산업용 섬유로 눈을 돌려, 건축 현장에서 무거운 자재를 크레인으로 나를 때 자재를 묶는 벨트(벨트슬링)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벨트슬링으로 자본을 축적한 메이다이는 질긴 소재 개발에 역량을 모아 등나무로 엮인 의자를 보고 4축 직조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기존 섬유는 씨줄과 날줄을 교차해서 천을 짜는 2축 직조 방식인데, 사선으로 두 개의 실을 더 넣는 4축 직조로 질긴 섬유를 만드는 것이었죠. 직조기 개발은 순탄치 않았고, 10년간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실패해 1998년에 해당 분야 사업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미국의 섬유업체가 4축 직조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우주왕복선의 보강재로 사용해보자고 제안해온 것이죠. 연구를 재개한 메이다이는 2003년 세계 최초로 4축 직물 테트라를 완성했습니다. 테트라는 현재 골프클럽, 테니스 라켓 등 스포츠용품의 손잡이를 감는 섬유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주류를 위한 지원 사업 어떨까?

우지차에 밀린 아이야는 말차의 변색을 막는 기술혁신을 이루었습니다. 후루야는 금속 액화에서만큼은 전통적인 귀금속업체들을 뛰어넘는 탁월한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 질긴 섬유를 생산하기 위한 지난한 투자가 없었다면 메이다이의 성공은 있을 수 없었죠. 이 소부장 기업들은 경쟁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혁신을 통해 1등에 밀리지 않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들은 업계의 선두주자들을 타깃으로 설계됩니다. 우수업체 300개와 같이 피라미드의 상단에 위치한 업체들이 수혜자죠. 결국 잘하는 업체들이 더 잘하게지원하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주류들이 끼어들 틈은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그렇다면 비주류만을 위한 전용사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한국에도 지금은 비주류지만 아이야, 후루야, 메이다이와 같은 혁신을 일으킬 중소기업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포스트는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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