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그룹에서는 스톡옵션으로 수십억 원을 벌어들인 직원들이 꽤 있습니다. 스톡옵션을 행사한 직원의 연봉은 회장을 가뿐히 능가하죠. 전설은 2019년 상반기 163억 8000만 원을 수령한 박성도 셀트리온 고문입니다. 급여 2800만 원, 상여 200만 원으로 연봉은 3000만 원이었지만 스톡옵션 행사 이익이 163억 5000만 원이었습니다.
과장, 차장급 직원도 물론 있습니다. 2018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김 모 차장은 스톡옵션 행사로 79억 7700만 원을 받았스니다. 급여 · 상여 등 근로소득은 1억 1000만 원, 78억 6700만 원은 스톡옵션 행사로 수령한 것입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에서는 김 차장 말고도 이 모 과장(44억 원), 최 모 차장(24억 원), 현 모 차장(24억 원) 등이 스톡옵션을 행사해 수십억 원을 수령했습니다. 같은 해 셀트리온에서도 이 모 차장과 박 모차장이 스톡옵션 행사로 각각 약 25억 원, 17억 원의 보수를 받았죠. 셀트리온은 직장인이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의 한계를 무너뜨린 셈입니다. 회사 임원이 아닌 직원이 5억 원 이상 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셀트리온에서만 특이한 사례가 대거 출현해 언론은 이를 앞다투어 기사화하기도 했죠.
셀트리온은 국내 상장사 중에서도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기로 유명합니다. 셀트리온 창업자 서정진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키우면 직급과 상관없이 보상을 받는 조직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스톡옵션은 임원과 직원 간 위화감을 없애고 사기를 높여주려고 도입한 겁니다. 임원들만 높은 연봉을 받는다면 직원들이 일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까요? ‘내가 저들 잘살게 하려고 뼈 빠지게 일하네’ 하는 자괴감이 들 겁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절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셀트리온그룹 내에서 스톡옵션을 포함한 보수 총액 순위를 매겨보면 창업자이자 회장인 서정진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납니다.
셀트리온이 2015년부터 5년간 직원들에게 부여한 스톡옵션 물량은 약 200만 주입니다. 전체 유통주인 약 1억 2500만 주의 1.6퍼센트죠.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스톡옵션 물량도 늘어나 셀트리온은 2017년부터 매년 약 50만 주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2019년 3월 주주총회에서 신규 팀장과 본부장 49명에게 47만 주를 지급했는데 1인당 평 균 9600주, 당시 종가 19만 2500원 기준으로 약 18억 5000만 원어치였습니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한 채씩 나눠주는 것과 같습니다.
사진 출처 : 셀트리온 홈페이지
셀트리온의 스톡옵션 제도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주주들도 물론 있습니다. 매년 셀트리온의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스톡옵션에 대한 지적이 빠지지 않습니다. 스톡옵션으로 풀린 주식이 시장에 쏟아져 주가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죠.
그러나 서정진 회장은 스톡옵션제도를 손질할 생각이 없습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회사 가치가 상승했으니 보상은 당연하며, 스톡옵션이 회사 성장의 핵심 원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9년 3월 주주 총회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주주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분은 주주들입니다. 그 주주들의 이익을 만드는 게 셀트리온 임직원들이에요. 우리 회사 회장, 부회장들 연봉 많이 받지 않습니다. 삼성 이사급도 안 될 겁니다. 저나 임직원 모두 월급 보고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의 미래를 보고 일합니다. 우리 직원들, 실력으로 보나 업무량으로 보나 글로벌 제약사에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회사 미래를 짊어질 고급 인력인 만큼 최대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회사의 미래를 위한 것이고 결국 주주들을 위한 일이에요. 주주님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저희 직원들의 능력을 한번 믿어보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가는 실적으로 견인하겠습니다.”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도 스톡옵션제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셀트리온 직원들은 글로벌 제약사도 할 수 없는 걸 해냅니다. 임상 시간을 단축하는 걸 보세요. 셀트리온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로 가르치고 키운 인재들입니다. 20억 원은 물론 굉장히 큰돈이지만 한 명의 직원이 200억 원, 2000억 원의 돈을 벌어다주면 회사로서는 이익이 더 크죠.”
경영진 입장에서 스톡옵션의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는 이른바 ‘먹튀’입니다. 바이오업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죠. A라는 바이오업체 부사장이 2018년 사표를 내고 스톡옵션으로 103억 원을 챙긴 이후 주가가 폭락했고 이 회사가 개발 중이던 항암제는 결국 임상3상에 실패했습니다.
회사가 더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없거나 회사 가치 대비 주가가 높다고 판단되면 임직원들은 스톡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납니다. 인재를 유치하는 역할을 했던 스톡옵션이 인재를 내치는 역기능을 하죠.
스톡옵션제도는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유지될 수 있습니다. 국내 바이오 회사 B사의 경우 거액의 스톡옵션을 주고 경쟁사의 인력을 대거 데려왔는데 이들이 행사 기한인 2년을 채운 뒤 줄줄이 퇴사하는 바람에 팀 전체가 사라졌습니다.
스톡옵션은 또 직원들의 관심을 주식으로 쏠리게 만듭니다. 제약회사 C사의 창업자는 2015년 8조 원대 기술수출을 성사시킨 후 직원 1인당 평균 4000만 원 규모의 주식을 나눠줬는데 이후 직원들이 주식 이야기만 하는 것을 보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물론 셀트리온에 ‘먹튀’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일찌감치 스톡옵션을 챙겨 회사를 나간 임원들이 있습니다. “너무 일찍 나왔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2009년 1만원대였던 셀트리온 주가가 최고 정점을 찍었을 때 37만 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셀트리온에서는 ‘오래 버티는 자가 승자’입니다.
스톡옵션으로 말이 많지만 신기하게도 셀트리온은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십억을 벌었다고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람들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출근한다고 합니다. 스톡옵션으로 인한 내부 갈등이나 불협화음은 많지 않은데 가족, 친척, 친구 들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이 잦아 힘들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후문이죠.
왜 셀트리온은 스톡옵션의 후폭풍이 덜한 걸까요?
“나도 나중에 팀장이 되면 저만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버티는 거죠.”
셀트리온 직원들은 스톡옵션을 ‘고생한 만큼 얻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로또처럼 운이 좋아 생긴 불로소득이 아니라는 말이죠.
“팀장으로 승진하면 외부에선 ‘스톡옵션 받게 돼서 좋겠다’고 하는데 사내에서는 마냥 부러워하지만은 않아요. 임원, 팀장 들이 일하는 걸 보면 얼마나 힘든지 보이거든요. 스톡옵션을 받는 만큼 책임도 막중해지죠.”
기우성 부회장은 임원 대상 워크숍에서 “스톡옵션으로 벌 만큼 벌었잖아? 지금이라도 일하기 싫은 사람들은 다 나가. 우리 회사는 그런 회사 아니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스톡옵션을 받은 임원이 일을 제대로 안 하면 ‘이기적인 인간’이 된됩니다. 자기 호주머니만 챙기고 회사의 창창한 앞날을 가로막는 자가 되는 거죠.
셀트리온에서 스톡옵션은 나 혼자 일을 잘해서 받은 개인 성과급이 아닙니다. 셀트리온 창업 멤버들과 초창기에 합류한 1세대들이 다 함께 일군 것이고 2세대에게 똑같이 남겨줘야 할 유산으로 생각합니다. 스톡옵션 수혜자의 임무는 지속 성장이 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셀트리온의 스톡옵션은 회사와 임직원을 운명 공동체로 단단히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확천금을 얻고도 여전히 출근하는 직원들이 셀트리온에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다른 기업의 경우 대체로 스톡옵션은 효과가 일시적이었고 업무 성과를 높이지 못했습니다. ‘스톡옵션 지급 → 동기 저하 → 사업 정체 →주가 하락 → 퇴사’라는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죠.
셀트리온은 스톡옵션을 개인의 동기유발보다 전체의 연대감을 형성하는 용도로 활용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스톡옵션 → 사명감 강화 → 사업 성장 → 주가 상승’의 수순을 밟았습니다.
셀트리온의 스톡옵션 제왕들에게 왜 계속 회사에 다니는지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회사가 앞으로 더 잘될 것 같아서.”
“더 좋은 회사를 못 찾아서.”
“일이 재미있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회사가 성장하는 것만큼 큰 행운과 행복은 없다.”
서정진이 스톡옵션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직원들의 자질과 능력을 돈으로 계산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투자하고 보라는 거죠. 모든 일의 핵심은 사람이고. 사람에게 지나칠 정도로 투자해야 발전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색해서는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내기 힘듭니다. 당시 매출 1조 원도 안 되었던 회사가 과장, 차장급 직원에게 수십억 원의 인센티브를 주는 건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 비상식적인 보상이 비상식적인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서정진은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 성공법이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 포스트는 『셀트리오니즘 : 셀트리온은 어떻게 일하는가』를 바탕으로 발췌, 재구성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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