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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사이]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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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사이]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습니다

업무차 만난 부부, 상담을 하다보니 맞벌이를 계속 해왔음에도 자산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그 정도 수입에 결혼 13년차면 자산의 평균치라는 것이 있는데 한참 모자랐지요.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결혼 첫 달부터 지금까지 13년 동안 매월 130만원씩 시부모님 생활비를 드렸습니다.”

13년간 매달 130만원

깜짝 놀랐습니다. 적금 만기도 1년이 가장 많고 길어야 3년입니다. 3년 만기 적금을 만기까지 유지하는 사람은 전체 가입자의 10%가 안 됩니다. 내가 쓰기 위해 모으는 적금도 3년 만기를 지켜내기가 힘든데, 무려 13년이나 매달 130만원씩 생활비를 꼬박꼬박 드리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짓자 남편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함께 벌지 않았다면 부모님에 대한 남편의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그 큰돈을 드리는 게 가능했을까요?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

남편이 말한 것처럼 어쩔 수 없으니까요.”
아내분의 말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꼭 칭찬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다 숙연해집니다. 말씀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지만, 13년동안 남편에게 말 못 했던 속상한 순간이 많았을 것입니다. 해외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을 수도 있고 친구들이 너는 왜 그렇게 사니? 나 같으면 못 한다라고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13년 동안 남편도 알아주지 않은 자신의 고생과 마음을 생전 처음 본 사람이 알아주었으니까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연우 아빠는 H은행에서 20년 넘게 근무 중입니다. 연봉도 높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객관적인 지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우 아빠는 유전적인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근육이 위축되면서 몸이 마비되는 병인데, 아버지가 그 병으로 돌아가셨고, 지금은 여동생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회사 그만두면 생활은 어떡해?

"어제 아내와 크게 싸웠어요. 얼마나 서운하던지, 속상해서 소주 한잔 마시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연우 아빠는 걷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다가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 못해 큰 사고가 날 뻔도 했답니다. 이런 몸으로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게 힘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차라리 기회가 있을 때 명예퇴직을 해볼까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이 나이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어렸을 적 아버지 모습도 오버랩됩니다. 왜 하필 내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라는 마음이 들면서 억울하고 분하고 그래요. 그래서 어제 아내에게 내 상황이 이러니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우선은 쉬면서 여행도 하고 건강도 좀 챙기고 싶다고 했죠. 그런데 아내 말이 정말로 속상하고 서운하더라고요.”
연우 엄마가 뭐라고 하셨는데요?”
“‘당신이 지금 51세이고, 연우가 고1이야. 자기가 그만두면 우리 생활은 어떻게 하라고? 무슨 대안은 있어? 힘들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다녀야지. 그건 안 돼, 다시 생각해봐라고 화를 확 내더니 방에 들어가더라고요.”

이런 말이 듣고 싶다

 

솔직히 아내가 이런 말을 해주면 좋겠다고 기대했어요. ‘그래, 20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한눈팔지 않고 살아왔으니 이제 좀 쉬어. 몸도 안 좋은데 심리적으로 힘들기도 할 거야. 일단 쉬면서 생각해. 안 되면 내가 뭐라도 해볼게.’ 이런 말을 듣고 싶었어요. 솔직히 내가 뭐라도 해볼게라는 뒷말은 안 해도 됩니다. 아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무 대책도 없이 그래, 고마워하고 그만둘 수 없잖아요. 제가 그렇게 하지도 않을 거라는 거 한결이 아빠는 아시잖아요. 아내 말에 서운하고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연우 아빠가 가장으로서 의무를 잊을 리 없고 책임을 회피할 리 없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그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가 나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 없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저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의도는 똑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받아주고 용기를 달라는 것이지요   

부부라서 생략하는 말

힘들 때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과정을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것인데, 가까운 가족일수록, 가장 아껴줘야 할 부부 사이일수록 그런 말을 잊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무거운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저 알아주고, 맞장구만 쳐줘도 될 텐데 말이죠.
가까운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를 줄 때는 대부분 이런 상황입니다. 누군가가 어쩌다 한 번 선심 쓰는 5천원의 밥값에도 우리는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베푸는 배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그냥 지나칩니다. 배려를 당연함으로 지나치는 것이 누적되면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람은 오로지 공감과 감동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진짜 힘이 들 때 그 상황을 이겨내는 에너지는 가족의 인정과 감사함 그리고 진심을 담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입니다    
    

 이 포스트는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밀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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