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실수를 경험한다. 기업 활동이 사람들의 크고 작은 결정들로 이루어지다 보니, 작은 실수 때문에 큰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실수는 병가지상사이니 다음에 잘하자.”라고 다짐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이 재발을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방법일까?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포스트모텀으로 왜 문제가 일어났는지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한다. 포스트모텀은 우리말로 부검 또는 검시라는 뜻이다. 포스트Post는 ‘후’, 모텀Mortem은 ‘죽음’이다. 즉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직간접적 원인을 사후에 총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한 방법이다.
위키피디아의 포스트모텀 페이지에 링크되어 있는 〈지디넷ZDNet〉 기사에 성공적인 포스트모텀의 포인트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아래에 정리해보았다.
1. 모든 관계자를 초대한다
관리자들만 모이거나 팀의 일부만 모일 경우, 핵심적인 정보나 통찰을 놓칠 수 있다. 중요도가 높은 공식 미팅으로 일정을 잡되, 가급적 사고 수습이 이루어진 직후에 하는 것이 좋다.
2. 시간 순으로 분석한다
사고 과정과 대응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누가 언제 어떤 정보를 접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기술하다 보면, 근원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거나 복합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데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
3. 잘된 일과 잘못된 일을 모두 검토한다
잘된 일은 모범 사례로서, 잘못된 일은 보완해야 할 시스템의 약점을 찾아내는 데 꼭 필요하다.
4. 책임자를 문책하는 미팅이 아니다
실수한 사람 또는 문제의 책임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다면, 그 조직은 점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정보를 각 팀(혹은 각 개인)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원인 분석을 통해 다음 사고를 예방하거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5. 개선책을 도출한다
‘5Why’ 기법을 쓰기도 한다. 계속해서 다시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왜 일어났는가?” 껍질을 다섯 번 정도 벗기고 나면 가장 기저에 있는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개선책을 세운다.
6. 공개한다
가능하다면 회사 전체와 공유하는 것이 좋다. 여러 사람이 알수록 업무 프로세스나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있어 정보 공유나 협조를 구하기 쉽다. 실수를 조직 전체가 지성적인 방법으로 간접 경험하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포스트모텀(Post-mortem) 학교에서 아이의 점심이 준비되지 않았다.
개요(Overview) 아이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는다. 부모는 미리 점심을 주문해놓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달 말에 주문을 깜빡했다. 아이가 점심을 굶을 위기에 처했다. 회사에서 전화를 받은 아빠가 급히 회사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아이에게 가져다주었다.
시간 분석(Timeline)
11:45 아이가 점심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47 아이가 교무실에 달려가 점심이 없다고 말했다.
11:48 아이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11:55 아빠가 회사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12:10 샌드위치가 아이에게 배달되었다.
응급조치(Immediate Action)
가장 빨리 준비할 수 있는 음식을 직접 배달한다.
옵션 1: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서 배달한다. 예상 소요 시간35분.
옵션 2: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배달한다. 예상 소요 시간 25분.
근본 원인 분석(Root Cause Analysis) 점심을 주문하는 것은 잊기 쉽다.
5Why 분석(5Why Analysis)
아이들의 점심 주문이 되어 있지 않았다.
Why? 점심은 최소 이틀 전에 주문해야만 한다.
Why? 매월 말일 전날에 주문해야 하는데 잊었다.
Why?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나서 하려다가 잊었다.
Why? 한 달에 한 번 있는 일이라 잊기 쉽다.
Why? 습관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일은 잊기 쉽다.
논의(Discussions)
한 달에 한 번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잊기 쉽다. 하지만 더 자주 주문하도록 바꾸면 더 자주 실수할 위험에 노출된다. 한 학기 치를 주문하면 아이의 입맛에 맞추기 어렵다. 휴대폰 리마인더(알림 메모) 기능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예방책(Preventative Measures)
한 달에 한 번 한 달 치를 아이들과 상의해서 주문한다. 아빠와 엄마가 같이하는 것으로 해서 한 사람이 잊더라도 다른 사람이 기억하도록 한다. 두 사람의 휴대폰에 리마인더를 설정하고 점심 주문이 완료되었을 때 해제한다.
모니터링(Monitoring)
주말에 아이들과 학교 점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음 주 점심 메뉴를 같이 검토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점심 식사 만족도를 모니터링한다.
실수를 모든 회사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어찌 보면 꽤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어떤 포스트모텀은 고객사 또는 일반 대중과 공유하기도 하는데, 회사의 프로세스나 기술 취약점을 드러내서 경쟁사에게 반사이익을 주지 않을까 걱정될 듯도 싶다. 공유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주는 장기적 이익이 단기적 손실보다 더 크다는 것을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경험을 통해 알아낸 것이 아닐까.
전 사원과 공유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복잡한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어떤 실수가 어느 정도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지 다 같이 이해한다면 실수를 예방하는 일 역시 모두의 것이 된다. 부서 A에서 일어난 실수에 대한 예방책을 세우면서 이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일을 하는 부서 B와 C는 여전히 같은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때 원인도 더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다.
전에 다니던 광고 플랫폼 회사에서의 일이다. 회사가 한참 성장하던 시기에 오버스펜드Overspend라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광고주 수천 명이 설정 광고 아이템 10만 개가 실시간 옥션에서 각각에 설정된 사용 금액 한도를 조금씩 넘기는 것이었다. 이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수십만 대의 브레이크를 중앙 통제실에서 조정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모든 차량의 속도와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복잡한 시스템 중 하나라도 잠시 느려지면 수많은 교통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오버스펜드가 이런저런 이유로 일어날 때마다 각 부서에서는 사고 예방책을 세우고 안정성에 문제가 있는 소프트웨어 부품을 개선했다. 그러다 약 1억 원 정도의 손실이 나는 큰 사고가 일어나자 모든 부서의 시스템 담당자들이 모여 포스트모텀을 실시했다. 여러 엔지니어가 모여 토론하고 그동안 일어난 모든 사고를 정리하다 보니, 이 제어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단계적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동안 시스템 각 단계의 안정성을 모니터링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속출했다.
약 2개월 후, 매달 2~3% 정도 발생하던 오버스펜드가 0.01% 수준으로 제어되었다. 그 후 내가 회사를 옮길 때까지 오버스펜드가 총 한도 금액의 0.5%를 넘는 대형 사고는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원인을 분석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제어 시스템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회사는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더 오래 걸렸을 것이고, 현재 규모로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세상에서는 모든 피자 배달원이 외발자전거를 탄다고 상상해보자. 훈련만 충분히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가끔 배달원이 넘어진다는 것인데, 이는 훈련을 거듭해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배달원이 외발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지면서 피자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할 경우, 피자집 주인이나 피자를 시킨 고객이 그에게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할까?
반복되는 환경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마치 사고가 쉽게 일어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디자인된 것처럼 보인다. 실리콘밸리에서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다 같이 공유하는 문화가 마련된 바탕에는 경험으로 얻은 다음과 같은 통찰이 깔려 있다. ‘누군가 사고를 냈더라도 그는 어쩌다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 뿐 그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았다면, 그 관리자에게 분명히 책임이 있다.’
훌륭한 관리자일수록 빨리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람들에게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모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이 사고 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 효과적임을 알아야 한다.
이 포스트는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회사는 뭐가 다를까』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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