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15분. 아내와 15개월 된 아이와 몰티즈 루루와 함께 집을 나선다. 운 좋게도 내 회사 가는 길에 아이의 데이케어(탁아소)와 아내의 직장이 있어서 차 한 대에 네 식구가 함께 출근한다. 아이는 뒷좌석에서 엄마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논다. 루루는 언제나 그렇듯 조수석에 앉아서 간다.
8시 45분에는 아이를 데이케어에 데려다준다. 늘 그렇듯 아이는 데이케어에 도착하면 울음을 터뜨린다. 처음에는 걱정도 되고 마음도 아팠지만 이제는 곧 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용하는 데이케어는 총 아이 세 명을 돌보는데, 선생님이 종종 휴대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준다.
9시쯤에는 아내와 반려견 루루를 아내의 직장에 내려준다. 루루는 회사에서 꽤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은 동료들이 루루를 보러 사무실에 찾아온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아내를 따라 주변 바닷가 산책로를 걷는다.
9시 반쯤에는 회사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는다. 메뉴는 주로 오트밀과 과일과 빵이다.
10시부터 앉아서 지라 애자일 보드를 점검하고, 이메일을 체크하고, 코딩을 한다. 열린 공간이지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쓰기에 집중은 꽤 잘 되는 편이다. 종종 다른 엔지니어나 매니저와 이야기하기도 한다. 주말에 뭐 했는지, 어제 뭐 했는지, 새로 나온 게임이나 넷플릭스 쇼는 뭐가 재미있는지, 애는 잘 크는지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새 서비스의 설계방향이나 서비스 구현 관련 의사 결정 같은 업무 이야기도 한다.
회의는 하루 한두 개 정도 있거나 없을 때도 있다. 필요할 때 급히 잡히는 미팅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팅은 금요일 아침 10시에 하는 스프린트 계획 미팅이다. 한 주간의 일을 돌아보고 다음 주에 할 일을 계획한다.
한 주간의 일을 돌아보는 시간에는 잘된 것, 잘못된 것을 구글독스에 입력한다. 잘된 것에 ‘프로젝트 론칭’, ‘새로운 팀원 환영’ 같은 내용이 들어가는데 농담이 반이다. ‘우리 아기가 밤에 깨지 않고 통잠을 잤다’, ‘새 자전거를 샀는데 완전 멋지다’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집어넣어 서로에게 웃음을 준다.
잘못된 일에는 ‘지난주에 계획한 목표를 채우지 못했다’, ‘다른 팀과 싸웠다’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써넣는다. 목표를 채우지 못한 경우에는 목표 포인트를 조정하여 팀의 속도가 목표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한다. 목표와 데드라인에 맞추어 팀의 속도와 일의 양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속도에 따라 목표와 타임라인을 수정한다. 팀의 속도가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급하게 일하지 않고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은 주로 파스타, 샐러드, 고기가 나오는데 아주 건강한 식단이다. 여섯 가지 옵션 중 다섯 가지가 샐러드이고, 심지어 수요일은 채식의 날이어서 고기가 아예 안 나오기 때문에 투덜거리는 사람도 많다. 오후에도 코딩과 미팅을 하고 5시에는 퇴근한다.
5시 45분에는 무조건 아이를 데리러 간다. 그래서 5시 이후 미팅에는 참석을 못 한다. 5시 이후에 미팅을 잡는 일도 거의 없지만, 4시 미팅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미안합니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요.” 하고 자리에서 먼저일어난다.
모든 기업이 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아이 픽업을 제시간에 하는 것이 회사 회의보다 중요하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 픽업이 늦으면 데이케어에 벌금을 내야 한다. 데이케어 선생님들의 시간도 내 시간만큼 중요하다. 내 회사의 회의로 인해 데이케어 선생님들의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다.
아내와 루루를 태우고 아이를 태워서 집에 도착하면 6시 15분 정도가 된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내가 운동하는 날이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아내가 운동하는 날이다. 운동하는 사람은 우유 같은 걸 간단히 먹고 운동하러 나간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아내는 요가, 발레, 필라테스를 합친 바Barre운동을 한다. 집에 남은 사람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이 보는 것은 힘들지만 꽤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다.
9시 이후는 아이가 자는 시간이자 나와 아내 중 한 사람이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다. 아이는 9시쯤에 잠들어 이튿날 아침 8시까지 잔다. 아이가 잠든 이후에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회사 일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한다. 아주 평화로운 시간이다.
처음에 아내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돌볼 때는 많이 힘들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계속 물어봐야 했고, 아내의 방식에 비추어 잘못된 것은 없는지 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데 내가 아내의 아이를 봐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를 본다고 생각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가 주도적으로 아이를 돌보다 보니 내 육아 방식도 생겼고, 아내와도 서로의 육아 방식을 존중하게 되었다.
아이의 데이케어 일정에 맞추어 살아서 주중에 저녁 약속을 잡기는 정말 어렵다. 다른 친구들도 주중 저녁에는 가족과의 일정이 있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대신 주말에 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놀곤 한다.
아빠가 되고부터 주중 저녁 모임이나 회사 팀에서 하는 게임나이트, 맥주 한잔하는 해피아워에 참석하기가 어려워졌다.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갈 수는 있겠지만, 차 한 대로 움직이는 우리 가족은 픽업 일정 등 계획해야 할 것이 많아 번거롭다. 사회생활에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아이는 정말 좋다.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다. _Will(유호현)
이 포스트는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회사는 뭐가 다를까』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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