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실리콘밸리 회사의 임원들이 기내용 가방에 노트북 가방을 하나 더 메고 수수한 옷차림으로 출장을 간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옆에서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일하고 있어 살펴보니 모 기업 임원이더라.” 하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나 흔하다.
아무래도 오랜 전통을 가진 기업보다는 급속히 성장한 스타트업이 많다보니, 형식적인 것보다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는 정신’Scrappiness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기사 딸린 고급 차를 타고 수행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받는 임원은 오히려 생소하다. 회사 안에서도 사장실, 회장실 등 임원을 위한 특별 공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원도 직원들과 같이 열린 공간에서 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늘 바쁘고 정신없어 보이는 사람은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하고 의미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미팅이 빽빽하게 잡혀 있지만, 급하게 일하거나 의사 결정을 갑자기 바꾸지 않는다. 언제나 차분히 계획하고 실행한다.
특별한 요청이 있는 회의 외에는, 상시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 시중을 드는 비서가 따로 없다. 점심 미팅이 있을 때 도시락을 회의실에 갖다둬야 한다거나 원격 회의 세팅이 필요한 경우에 비서에게 특별 요청을 한다. 이렇다 보니 임원과 비서의 일정이 따로 돌아가는 경우도 흔하다. 비서는 원격으로 임원의 일정을 관리하고, 임원은 그 일정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또한 비서가 임원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해주는 경우가 없다. 비서는 임원의 편안한 회사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임원이 미처 신경 쓸 수 없는 일, 일정 정리나 외부 손님들과의 미팅 확인, 행사 코디네이션 등을 전문적으로 하며 그 이외의 일을 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 아무 때나 불러서 임원의 여행 계획을 돕게 하거나 잔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회사 차원에서도 임원을 비롯한 직원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건강과 가족이다. 정해진 시간 외에는 일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밤에 이메일을 보내는 것은 아주 삼가야 한다. 입사 초기에 열정이 넘쳐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다음 날 임원이 따로 불러서 “밤에 이메일을 보내면 상대도 신속히 답해주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생기고 당신도 생활과 일의 균형이 깨지니,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급할 것 없으니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고, 추가로 더 일하고 싶을 때는 정말 그래야 하는지 잘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치지 못할 정도라면 그것은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므로 업무량을 줄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임원들은 때로 업무 외에 선배 부모로서 육아와 가정생활에 대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해준다. 아기가 아프면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일반 공채로 뽑은 사람들에게 비슷비슷한 일을 맡기는 위계 조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덜 소중하게 대하게 된다. 그러나 역할 조직에서 각 역할을 맡은 사람은 모두 전문가다. 그러한 조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실리콘밸리 임원들은 ‘나보다 높은 사람, 나보다 낮은 사람’ 같은 서열 의식이 거의 없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경험한 임원들은 그런 인식이 아예 없는 듯했다. 나이 많은 임원들은 동네 아저씨나 지혜로운 할머니, 할아버지같고, 젊은 임원들은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며 친구같이 지낸다. 윗사람으로서 완벽한 척하기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의사소통하고, 동료들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 다른 모든 직원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신비주의 전략 같은 것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회사와 스스로의 발전을 추구하는 임원이라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권위를 자신의 일에만 한정할 줄 안다.
실리콘밸리 임원들은 때로 친구 같다. 내가 회사 공유 캘린더에 ‘유급휴가’라고 써넣고 이메일로 휴가를 다녀오겠다고 할 때 임원이 처음 던지는 질문은 “어디 가?”였다. “일은 어떻게 하고?”가 아니라. 업무 인수인계는 내 영역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에 “잘 다녀와.”라거나 “신나게 놀고 와.”라고 인사한다. “힘들게 일했으니 좀 오래 놀아도 괜찮지 않겠어.”라거나 “일 안 하는 직원이라고 밉보이면 어떡하지?” 같이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스스로 휴가를 정당화하거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회사의 중요 제품 론칭 시기나 큰 행사 일정은 연초에 미리 발표하기 때문에 갑자기 생긴 회사 일정으로 휴가 계획을 변경하거나 휴가를 갈지 말지 생각하면서 대기하는 일도 없다. 휴가를 다녀오면 일대일 미팅 때 휴가 기간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친구 사이처럼 같이 웃고 떠든다.
우리 회사 임원은 개를 좋아한다. 내가 회사에 개를 데려가면 사무실 바닥에 엎드려 개와 같이 놀 정도이다. 더 좋은 임원이 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그냥 그렇게 행동한다. 좋은 간식을 발견하면 나누어주고 개를 데리고 같이 산책도 한다. 사실 내가 개를 회사에 데려가는 날에는 임원뿐 아니라 여러 동료 직원들이 내 주변에서 놀다간다.
1. 임원으로서 당신이 생각하는 회사의 향후 10년간 비전은 무엇인가?
2. 그 비전을 위하여 지금 회사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3. 내가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4.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하여야 하는 이유, 이 회사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5. 임원이라도 매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 이 회사에서 어떤 것을 제일 많이 배웠나?
그리고 그 대답을 들으면서 회사 제품에 대해 질문하고 구체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깊게 이어나갔다. 임원들이 회사 비전을 구체적이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 사람의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조금 난감하고 답하기 어려울 수 있는 질문에도 성의껏 대답하는 임원들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포스트는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회사는 뭐가 다를까』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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