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직원들은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정권자다. 그들에게 상사의 말은 명령이 아니라 제안일 뿐이다.
내가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디자이너라고 해보자. 새로운 스마트폰 디자인을 맡았다. 내 경험과 세계 디자인 트렌드, 사용자의 호감도 등을 조사하고 종합하여 아름다운 빨간색 디자인을 내놓았다. 이 스마트폰은 잘 팔릴 뿐 아니라 전 세계 스마트폰 디자인을 선도할 것이고, 사람들은 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을 선망의 눈길로 쳐다볼 것이다. 자연스레 “이 스마트폰을 디자인한 사람이 누구야?”라고 물을 것이고, 내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것이며, 수많은 회사들이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 디자인이 인기를 끌지 못한다면 나는 그 책임을 오롯이 져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내 커리어를 걸고 이 스마트폰의 디자인이 성공을 거두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회장이 빨간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고급스러워 보이도록 어두운 남색으로 바꾸라고 한다. 내 경험과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남색 스마트폰은 대중의 선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회장의 피드백은 이해하지만, 색을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회장의 한마디에 전문가가 디자인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만든 디자인을 전 세계에 히트시키는 것, 그리고 이런 성취를 통하여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회장의 피드백을 참고하여 디자인을 개선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명령으로 받아들여 원하지도 않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면 그 디자인은 더 이상 전문가의 작품이 아니다.
그 분야 전문가에게 회장의 말은 즉각 반응해야 할 명령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이기적이라거나 독불장군이라는 뜻이 아니다. 매니저는 전문가들을 매니지먼트하고 최고경영자는 회사 방향을 결정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결정하고,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링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 각자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판단하여 회사의 미션에 맞는 최고의 결정을 내려 회사에 기여한다. 역할 조직에서는 각자의 역할에 맞는 결정권을 부여하고 책임을 지움으로써 전문가들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전문가들이 결정권을 갖는 실리콘밸리 회사는 어떻게 모두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회사의 미션과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전 직원이 정확히 이해하도록 한다. 미션이 기업의 존재 이유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라면, 기업의 가치관은 미션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실리콘밸리 문화를 선도하는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인터넷 서비스 기업과 소프트웨어 기업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핵심 가치를 추구한다.
일례로 구글의 미션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조직화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쉽게 쓰도록 하는 것”이고 다음과 같은 핵심 가치를 추구한다.
이러한 구글의 가치는 사용자들이 구글 제품을 쉽고 재미있고 친숙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재미’와 ‘겸손’과 ‘사회 기여’를 지향하는 구글의 자율주행차는 정말 만만하게 생겼다. 반면에 세계 최고의 고급 자동차를 목표로 하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자율주행차는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힘이 느껴지고, 정말 돈을 많이 벌어야 살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문가는 이러한 회사의 방향성이 자신과 맞는가를 고려하여 회사를 택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 적합성’ Cultural Fit에 대한 고려로, 각 직원의 신념과 행동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및 문화와 잘 맞을 때 개인은 물론 회사도 성장한다. 만약 호화로운 차를 만들고 싶다면 구글의 자율주행차 디자인 팀에서 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사람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친숙하게 느끼길 바란다면 구글에서 꿈을 펼치고 싶을 것이다. 자신에게 문화적으로 잘 어울리는 회사를 선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말 중요하다.
구글의 10가지 핵심 가치에는 세부 설명이 붙어 있는데, 그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멋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자’의 부연 설명은 다음과 같다.
•훌륭한 인재를 고용하고 그에게 높은 기대치를 유지한다.
•인재가 늘어나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공명정대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서로를 대한다.
•공개적으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검증한다.
•개인과 아이디어의 다양성을 중시한다.
•객관적인 데이터로 의사 결정을 한다.
구글이 말하는 ‘훌륭한 인재’는 똑똑하고(우수한 학벌이나 스펙으로 검증 가능한 자질) 열심히 일하는(개인의 사생활을 기꺼이 희생할 정도로 회사 일에 몰입하는) 사람이 아니다. 구글의 10가지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스펙이 뛰어난 인재라도 구글이 지향하는 것과 다른 가치를 지향한다면 구글에서 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인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양성은 인정하되 회사 미션을 위해 일할 때는 같은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회사 일과 개인의 가치를 동시에 존중한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 또한 실리콘밸리의 다른 회사들처럼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직원이 200명도 채 되지 않지만 국적은 10개 이상이다. 미국, 캐나다, 중국, 인도, 한국, 일본, 타이완, 네팔, 필리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프랑스, 터키 등 정말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이도 다르고, 전공이나 교육 수준도 다양하다. 그렇지만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구글이나 넷플릭스처럼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내에서 공유하는 가치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문화 적합성이라는 표현 대신 인종, 종교, 성별, 나이를 넘어 회사의 핵심 가치를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가치 적합성’Value Fit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사용한다. 문화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문화 적합성이란 표현이 자칫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을 배척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Wilmot Reed Hastings Jr.가 「넷플릭스의 문화Netflix Culture」라는 문서를 발표했다. 이는 실리콘밸리 임원들 사이에 회자됐고,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문서”로 꼽기도 했다.
이 문서는 핵심 가치가 단지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직원의 승진과 해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행동 양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핵심 가치에 동의하고 그것을 내면화하지 않는 사람은 넷플릭스에 서 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누군가 내게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 커리어를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각 회사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살펴보고 그중 자신과 잘 맞는 회사를 찾아보는 데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 포스트는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회사는 뭐가 다를까』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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