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는 아침에 개와 함께 출근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도,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공원이나 풀밭을 걸으며 주인과 함께 출근하는 개들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가끔 개를 데리고 회사에 가는데, 개와 함께 다니다 보면 출근견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2008년에 APPAAmerican Pet Products Association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있는 회사의 약 17%, 주로 서부에 위치한 테크 회사들이 개와 함께 일하는 업무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아마 그 수가 더 늘었을 것이다.
개 관련 복지에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개와 친밀한 회사 환경 조성에 관한 책들도 많이 출간됐고, 대학에서도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센트럴미시간대학에서 2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개와 함께 업무하는 환경에서 서로를 더 신뢰하고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한다.
개와 함께 출근하는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매일 같이 회사 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또 집에 혼자 있을 개 걱정을 덜 수 있어서 오히려 회사에서 더 집중해 일할 수 있어 좋다며 이런 복지를 중요시했다. 또 개는 없지만 개를 사랑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회사에서 개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와 함께 출근하는 루루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늘 세 마리의 개들과 아침 인사를 한다. 코가 찌그러져 귀여운 벨라, 허리가 길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진 제이크, 에너지 넘치는 아기 푸들 비쉬마. 건물 끝에 자리한 내 책상까지 걸어가는 동안 지나가는 직원들마다 강아지에게 인사하고 뽀뽀하고 쓰다듬어주니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출근길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점심 식사 후 루루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베이를 따라 길게 뻗은 길을 20분 정도 산책하곤 한다. 그런 날은 오후 근무 시간이 더욱 활기차다.
개인적으로 개와 함께하는 회사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을 꼽는다면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더 쉽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갓 입사했을 때 다소 형식적으로 환영 인사를 주고받을 수도 있는데, 개와 함께 있으니 사람들이 더 쉽게 말을 걸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회사의 직원 페이지에 몰티즈 루루와 함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와서 루루를 쓰다듬어주면 엄청 좋아할 거야. 라고 루루를 소개했고, 개를 데리고 다니는 다른 직원들의 모임에도 가입했다. 영어와 영미권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대화 소재가 제한되어 있는 외국인이어서 어색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루루 덕분에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회사 면접을 할 때 ‘이 회사에 꼭 들어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개와 함께 출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실제로 회사에서도 사람을 뽑을 때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직원 복지 중 하나로 소개했다.
5년 전, 우리 가족은 한국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오랫동안 입양되지 않아 안락사 위기에 있었던 개 루루를 미국에서 입양했다. 어릴 때부터 주인에게 학대당하다가 간신히 경찰에게 구조된 루루는 한국의 보호소에서는 입양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미국의 유기견 구조 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미국으로 데려왔고 시애틀에서 임시 보호 중이던 루루를 소개받아 우리 가족으로 입양한 것이다.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 홀로 미국으로 건너온 루루는 이제 아빠와 엄마의 회사를 오가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덕분에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도, 다른 개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극복하고 쉽게 마음을 여는 명랑한 개가 되었다. 루루가 이렇게 좋아진 데에는 우리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 받은 동료들의 사랑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루루 덕분에 우리도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회사 생활이 더 즐겁고 행복해졌다.
개는 소중한 가족이자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개의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실리콘밸리 곳곳에 배어 있다. 개가 아파서 집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회사에 이메일을 보내면, 가족이 아픈 것처럼 함께 걱정해주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메일이 돌아온다. 개를 주인을 위해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종이나 귀여운 인형으로 보지 않고 친구로 대하면서 가족의 일원으로 그들의 행복을 존중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개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개가 개답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관심이 많다.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키우는 개들은 거의 대부분 유기견 센터에서 입양된 개들이고, 개를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닌 개가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제품들이 많다. 또 여러 여행 사이트들에는 개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가 따로 올라와 있고,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우리가 개와 함께 간다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개를 위한 간식과 물을 따로 준비해놓고 환영 메시지를 써주었다.
길을 가다 보면 어떤 곳에는 문에 ‘안내견만 출입 가능’Service Dogs Only이라는 표지가 있는데, 이는 다른 개들은 출입할 수 없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특수한 훈련을 받은 안내견은 예외적으로 출입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안내견을 훈련하고 정식 등록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면, 이 개들은 안내견 조끼를 입고 주인과 함께 거의 출입 제한 없이 어디든 다닐 수 있다.
길거리 상점 곳곳에는 개를 위한 물그릇과 간식 통이 놓여 있어 환영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고, 2세 이하가 다니는 데이케어에도 개가 있는 곳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논다. 동네마다 도그 파크Dog Park가 있어 목줄 없이 개들이 뛰노는 공간도 있고, 태평양 해변에 위치한 포트 펀스톤Fort Funston처럼 개들이 목줄 없이 마음껏 뛰놀고 수영하는 해변도 있다.
이런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개 목줄을 풀어놓아도 되는 ‘Offleash Area’ 표지가 없는 곳에서는 항상 목줄을 하고, 개들이 사람이나 다른 개를 공격하지 않도록 훈련시키며, 개가 머문 곳은 잘 치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훈련이 아직 덜 되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개들은 입마개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지나갈 때 먼저 길을 비켜준다.
미국에 처음 와서 친구의 개를 보고 귀여워서 ‘퍼피’puppy라고 했더니 친구가 어리지 않다면서 ‘도그’dog라고 정정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라는 말에 안 좋은 의미도 있어서 ‘강아지’, ‘애견’, ‘반려견’이라는 대체 단어를 쓰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퍼피는 ‘어린 강아지’, 도그는 ‘보통의 개’라는 의미로 사용하며, 부정적 느낌도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실리콘밸리에서 개는 회사도 같이 다니고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하는 정말 좋은 친구이자 가족이다. _Erin(김혜진)
이 포스트는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회사는 뭐가 다를까』에서 발췌, 재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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