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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컬리는 아이디어가 좋아 성공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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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 배송보다 특별한 것

사진 출처 : 마켓컬리 홈페이지

마켓컬리의 정체성처럼 여겨지는 샛별 배송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서비스라면 경쟁자들이 뒤이어 새벽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아 새벽 배송 서비스를 복제해내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마켓컬리가 특별했던 것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상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약조차 힘들다는 마장동의 프리미엄 한우 전문점 본앤브레드의 고기, 일찍 가서 줄을 서지 않으면 구경조차 힘들던 이태원 오월의 종의 빵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통 채널의 특별함은 일차적으로 취급하는 상품에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프리미엄 상품들이 마켓컬리를 다른 이커머스 쇼핑몰보다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또 하나는 상품들이 왜 특별한지를 설명해준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이는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은 오프라인 매장에 비해 훨씬 다양한 상품군을 갖추고 있지만 상품별 차이를 알 수 없어서 결정을 내리기가 곤란합니다. 과일, 채소, 축산, 수산물의 경우 그 곤란함이 더욱 커지죠. 설명은 읽으나 마나입니다. 모두가 신선하고 최고의 등급이며 맛이 좋다고 하니까요.
마켓컬리는 이러한 곤란을 해소해주었습니다. 제품군별 브랜드 수를 제한하여 선택지를 좁히고 각 상품에 설명과 스토리를 붙인 것이죠. 상품을 골라 담는 과정이 덜 피곤하며, 상품에 붙은 설명과 스토리는 선택을 좀 더 즐겁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바로 이것이 마켓컬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입니다.

사업 기회를 만든 ‘불편’의 이면

김슬아 대표가 마켓컬리를 창업한 계기는 한국에서 맞벌이 주부, 워킹맘으로 살면서 장 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선식품의 경우 택배를 받는 시간과 퇴근 시간의 차이가 클수록 신선도를 잃는 문제가 있었고 이런 부분을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창업했다는 것이죠.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림을 하고 장을 보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김 대표가 남들보다 훨씬 까다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채소, 고기, 과일 등 품목별로 품질이 좋은 곳을 체크해두고 장을 보러 다녀 배우자와 다투기까지 했다고 하니까요. 일을 하면서 장을 보는 사람들은 많고 그로 인한 불편함은 누구나 있지만, 대부분은 각자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정도에서 타협합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스스로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극대화했기에 불편의 수준이 남달랐던 거죠.
또 다른 이유는 김 대표가 무농약유기농 식품을 먹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산물 시장은 대중적인 시장이 아닙니다. 가격이 비싸고 판매처도 제한적이며, 과거에는 더 심했죠. 게다가 김 대표는 품질을 매우 깐깐하게 따졌기에, 주말에 장을 봐서 일주일을 보내는 일반적인 맞벌이 부부의 생활 패턴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편에서 사업 기회를 발굴한다는 말은 물론 맞지만, 그 불편의 크기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적 기질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위와 여건도 반영됩니다. 음식과 맛을 즐기고 미식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것은 김 대표의 개인적인 기질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높은 소득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유기농 식품시장은 건강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고학력, 고소득자가 대상이며, 비싼 가격 때문에 소득이 낮을수록 관심을 가지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사업 기회를 만든 그 불편은 경제적 지위와 개인적 기질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김 대표였기에 보인 불편인 것이죠. 고소득자가 아니라면 장볼 때의 불편보다 생활 속의 다른 불편이 머릿속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고, 고소득자로서 고강도 노동을 하며 미식을 즐기더라도 장을 볼 때마다 구매처를 달리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슬아 대표의 특별한 ‘커리어’

만약 누군가 김 대표만큼의 불편을 느껴서 사업 기회를 발견했다고 합시다. 하지만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자금, 인력 등은 어떻게 조달까요?
마켓컬리는 20155월에 랜딩했지만, 기업인 더파머스는 그해 1월에 설립했습니다. 창업 자본금 5억 원 중에서 3억 원은 옐로우모바일 이상혁 대표의 투자금이었고, 마켓컬리가 아직 콘셉트로만 존재하던 창업 2개월의 시점에서 DSC인베스트먼트로부터 50억 원을 투자받았습니다. 절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죠.
이를 두고 마켓컬리의 아이디어가 그 정도로 훌륭했고,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투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과관계의 오류가 아닐까요.
마켓컬리의 얼굴인 김슬아 대표의 이력은 특별합니다. 울산의 의사 부부 집안에서 장녀로 태어나 중학교 수석 졸 업 후 민족사관고등학교 진학, 17세에 보딩스쿨인 루미스 채피 스쿨로 유학, 힐러리 클린턴의 모교인 웰슬리 컬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BCG 인턴십에 참여하고, 골드만삭스 홍콩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하여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맥킨지 홍콩을 거 쳐 베인앤컴퍼니 서울까지, 매우 화려하죠. 바로 이 특별한 이력이 그녀가 사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김 대표의 커리어를 크게 둘로 쪼개면 투자와 컨설팅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컨설팅 업계의 주된 일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솔루션의 제공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기업으로부터 매우 비싼 컨설팅 비용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 추진과 계획, 숫자가 잘 갖추어진 보고서를 써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남이 하도록 제안하고 설득하면 컨설팅이 되고, 내가 하면 사업이 되죠.
마켓컬리뿐만 아니라 요기요, 위메프맥킨지, 리멤버, 파운트BCG, 어메 이징브루어리베인앤컴퍼니 등 2010년대 들어 탄생한 스타트업 중에 컨설팅 업계 출신들이 차린 회사가 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특히 컨설팅 업계 출신들은 투자업계와 서로 이직이 잦아서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업계 등에도 다수 포진해 있다. 당장 김 대표부터가 투자와 컨설팅을 오갔죠.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는 자금 유치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옐로모바일 이상혁 대표에게 창업 자본금으로 3억 원을 받은 것이나, 콘셉트 단계에서 1~2억 원도 아닌 50억 원을 투자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배경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

인력 확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공동 창업자인 박길남 이사는 김 대표와 베인앤컴퍼니 시절부터 함께한 동료로서 식품, 유통 분야의 컨설팅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사내 맛집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했고 음식에 관한 비슷한 취향과 성향을 공유했죠. 적합한 인물이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셈입니다.
마켓컬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물류 부분도 그랬습니다. 남편인 정승빈 대표는 김 대표보다 반년 정도 먼저 퇴사하여 유기농 클렌즈 주스를 배달하는 콜린스그린이라는 기업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냉장운송 부분은 작은 주스업체가 직접 할 수 없었기에 데일리쿨이라는 업체를 이용했고, 이 업체의 이성일 대표를 김 대표에게 소개해줍니다. 더파머스는 콜드체인 물류를 위해 데일리쿨을 인수하여 80여 대의 냉장차량을 운영하는 한편, 물류를 총괄할 로지스틱 리더로 이성일 대표를 임명합니다. 이외에 마켓컬리의 초기 인력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인이거나, 지인의 지인이었습니다.
물론 창업가가 첫 기업을 차릴 때의 구성원은 지인들 위주일 수밖에 없기는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주로 교류하고 어울립니다. 김 대표의 특별한 커리어는 마켓컬리가 등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켓컬리의 성공은 비즈니스의 냉정한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김 대표는 사업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자원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사업 모델로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축적해왔고, 본인이 엘리트였기에 자금 및 인력 조달 측면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업에서 아이디어는 중요하지만, 이것을 발전시키고 실행할 자원이 없다면 머릿속에서 끝나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아니라 누가 실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우리는 마켓컬리의 성공사례를 통해 비즈니스의 성공에서 아이디어는 부차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켓컬리의 아이디어가 훌륭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아이디어가 실행될 수 있었던 것은 김슬아 대표와 마켓컬리가 초기에 보유한 자원들이 충분했고 그 자원들을 잘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포스트는 멀티팩터 _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거짓말(김영준)의 내용을 바탕으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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