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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변신에는 이유가 있다?

인문 교양 읽기/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by 스마트북스 2020. 12. 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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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는 왜 신비로워보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가로 53센티미터, 세로 77센티미터의 이 인물화는 피렌체의 부유한 비단 상인 조콘다가 자신의 부인인 리사를 그려달라고 다빈치에게 의뢰해 그려진 작품입니다. <모나리자>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그림이 된 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독특한 화법도 그중 한 가지입니다.
다빈치가 사용한 화법은 그림 속 인물을 더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스푸마토(sfumato)’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희미한 윤곽선과 부드러운 채색으로 형태가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보이게 함으로써 보는 이의 상상력을 끌어냅니다. 모나리자의 눈꼬리와 입 가장자리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묘사하여 오묘한 신비감을 더하는데, 이 화법은 당시 매우 획기적인 시도였죠.
<모나리자>는 세계인들의 지극한 사랑과 관심 때문인지, 예술작품 중 가장 많이 패러디되고 복제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광고, 잡지, 애니메이션, 입체, 심지어 구운 토스트로 재현될 정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지의 패러디와 예술가가 당면한 시대적 배경과의 깊은 관련성이죠.

레디메이드 미술

1919년 마르셀 뒤샹은 파리의 길거리에서 <모나리자>가 인쇄된 엽서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검은 펜으로 수염을 그려 넣고 알파벳 대문자로 ‘L.H.O.O.Q’라고 적었습니다.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elle a chaudau cul’이고 뜻은 그 여자의 엉덩이는 뜨겁다입니다. 콧수염에 외설적인 농담까지 적어놓은 뒤샹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뒤샹은 1차 세계대전 말엽부터 유럽에 팽배했던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인 다다이즘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다다이즘은 전후의 무의미함과 허무주의를 암시하고, 부조리를 내세우며 전통미술과의 단절을 선언합니다.
이들의 대표적인 표현방식은 인쇄된 잡지나 신문에서 관련 없어 보이는 이미지를 오려 붙이는 포토몽타주였습니다.
기존에 만들어진 우리 주변의 것들을 가져다 쓰는 레디메이드(ready-made)’ 기법은 작가가 곧 창작자여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렸죠.
뒤샹의 는 예술이라 여겨지지 않는 주변의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기성품들을 예술로 변화시키는 레디메이드 미술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대중적 이미지를 적극 수용했던
앤디 워홀도 1963<모나리자>를 재현합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품고 있는 고고한 유일성과 상징성의 아우라를 부인하고,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복제를 반복했죠. 팝아트가 추구하던 탈상징화와 원본의 부재를 적극적으로 보여준 셈입니다. 복제된 <모나리자>는 이미지일 뿐이며, 여느 잡지에 인쇄된 인물과도 다를 바가 없어졌습니다.
1977년 제작된 페르난도 보테로의 <비만 모나리자>는 팝아트의 혁신적인 시도들이 무겁고 장엄했던 예술에 발랄함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콜롬비아 태생의 보테로가 미국 중심의 팝아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계적 흐름은 예술적 가치의 중량이 현저하게 감소되고 대중에게 활성화되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죠.
그래피티(Graffiti) 화가로 알려진
장 미셸 바스키아는 길거리에 마치 아이들의 낙서처럼 보이는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뉴욕 최고의 갤러리로 진출했습니다.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과 함께 협업 전시를 하기도 했는데, 이른바 하위문화라고 여겼던 그래피티를 예술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그가 재현한 <모나리자>(1983)의 이미지는 1달러에 인쇄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합니다. 양쪽에 그려진 1이라는 숫자, 그리고 미묘하게 조지 워싱턴을 닮은 모나리자의 모습에서 예술과 돈이라는 자본주의의 두 가지 통화가치를 읽게 되는 것은 분명 바스키아의 의도였을 것입니다.
미디어작가 이이남의 <모나리자 폐허>(2013)544초 길이의 디지털 영상입니다. <모나리자> 이미지 위로 비행기에서 폭탄이 투하되고 그 자리에 꽃이 피어나죠. <모나리자>가 상징하는 미술의 고대적 가치, 권위와 제도적 장치들이 파괴되고, 현대적인 새로운 가치로 피워 나가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재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재현의 재현도 충분히 나올 법합니다. <모나리자>의 변신을 통해 모든 예술의 흐름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명백한 것은 모나리자의 변신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이 포스트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백상경제연구원) 7장 단박에 읽는 서양미술사(백지희)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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