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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문 교양 읽기/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by 스마트북스 2021. 2. 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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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신은 천사에게 인간 세상에 내려가 세 가지 물음에 답을 찾아올 것을 명령합니다.

1. 인간의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3.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날개를 제거당하고 지상으로 추락해서 벌거벗은 채로 떨고 있던 천사는, 한 늙은 부부를 만나 그들의 집에 머물면서 신이 내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날을 기다립니다. 톨스토이는 천사가 찾아낸 답이 다음의 세 가지라고 썼습니다.

1. 인간의 안에는 사랑이 있다.
2.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앎이 허락되지 않는다.
3.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살피는 마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돌봄과 사랑으로 사는 존재다.

톨스토이의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에 간단히 사랑이 있다고 하는데, 사랑은 인간의 긍정적인 심성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인간이 자기 심신을 돌보는 것만으로 오롯이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일 뿐이죠. 사실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며, 사랑과 삶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사랑은 형제애(Brotherhood), 박애, 자비, 어질음()이라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인, 사람과 사람 사이

공자의 사상에서도 삶의 이상(理想)이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동료의 복리를 위하는 심오한 관심이 스며들어 있는 수양된 마음임을 강조합니다. 이런 이상이 공자의 인() 개념에 구현되어 있죠. 이라는 글자는 사람()과 둘()이라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른 사람과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연과 자로가 공자와 함께 있었는데, 공자가 “각자의 소망을 말하여 보라.”라고 하였다. 자로가 말하였다.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갓옷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해어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 합니다.” 안연이 말하였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함이 없으며, 공로를 과시함이 없고자 합니다.” 자로가 “선생님의 뜻을 알고자 합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늙은이를 편하게 해주고, 친구에게는 미덥게 해주며, 젊은이를 감싸고자 한다.”고 하였다. _『논어』, 공야장 편, ‘공자와 제자들의 소망’ 중에서

공자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실천적인 것이고 실천 가능한 도덕체계이며, 어떤 형이상학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의 도움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사람은 개별적으로 살 수 없고 타인과 관계를 가져야만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언어와 행위를 규제하는 규칙들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래서 은 공자의 사유체계 안에서 예()라는 다른 중요한 개념이 됩니다. 공자에게 는 극단을 피하는 삶의 방식과 이성과 감정이 조화를 이룬 상태로 이끄는 일종의 행위의 평형 바퀴입니다.
기독교의 형제애나 동양철학의 인 사상, 불교의 자비심 모두가 공동체와 사회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더불어 사는 어울림을 강조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은 자신이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유한한 존재이며,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반려로봇의 의미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걸어 다니면서 영상통화를 하고, 스마트워치로 영화와 텔레비전을 볼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익숙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SF영화에서 보여주던 슈퍼컴퓨터, 자율주행 자동차, 도우미로봇, 돌봄로봇, 로봇경찰 같은 것이 상용화될 미래가 멀지 않았습니다. 람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며 사용자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감정인식로봇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양로원이나 요양원의 노인들은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을 때, 로봇이 목욕을 시켜주거나 침대에서 들어 올려 이동시켜 주는 것에 더 만족스러워한다고 합니다. 로봇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덜 수치스럽고 더 독립적인 느낌을 준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는 조난을 당해서 무인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인물 척이 나옵니다. 척은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박하게 외로운 상황에서 구조될 날을 기다리는데, 배구공을 윌슨이라고 부르며 마치 사람인 양 말을 걸고 의지합니다. 이처럼 배구공에도 감정이입을 하는데, 반려로봇이나 돌봄로봇이 호감을 주는 외모와 마치 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마음을 읽는 능력까지 갖추게 되면 얼마나 더 애착을 느낄까요?
폭발물 탐지와 해체 임무를 위해 만들어진 군사용 로봇에 병사들이 각별한 애착을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해주고 망가진 로봇에 각별한 애착을 느끼고, 다른 로봇으로 교체하지 말고 그냥 수리해 주기를 간청한다고 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너의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가 그 꽃에 들인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듯, 비록 목숨을 구해주거나 만족스러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주지 않았더라도 내 곁에 머물면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그 대상에 애착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인간의 정서적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로봇이 상용화될 때 사람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그것이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한 채 도입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게다가 내 돈 주고 사서 사용하겠다는 것을 통제할 근거도 현재로서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려로봇의 상용화는 요즘 사람들이 서로 무인도에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느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배구공 윌슨에게 말을 걸고 정을 주는 척과 같은 심리 상태를 겪는 상황이 점점 만연해지고 있는 것이죠.

이 포스트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백상경제연구원) 3장 철학하는 삶이란?(김숙)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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