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발병 때마다 농장주 탓? 현직 농장주의 구제역 단상

구제역 발병 때마다 농장주 탓? 현직 농장주의 구제역 단상

“백신이 안 들어요”

 

구제역 예방에 관한 정부 홍보물

백신을 접종하는 등 철저한 예방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도상에 표시되는 구제역 발생 지역이 서서히 홍성군 인근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정부 방역 당국자들은 구제역에 감염된 농장을 봉쇄조치하고 돼지의 살처분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역 당국은 구제역 발병 원인을 ‘백신 미 접종’이라고 발표했다. 당국은 백신을 제대로 놓지 않은 농장에 벌금을 부과했고, 또한 이들 농장에 대해서는 돼지 살처분 보상금도 대폭 삭감했다.

그런데 구제역 발병 농가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정부가 배포한 백신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대표, 들었어? 지금 정부가 선정한 백신이 ‘물백신’이래. 돼지에게 맞혀도 효과가 하나도 없다고 난리여. 이거 진짜 큰일이여….” “그럴 리가요? 정부 방역당국에서 여러 백신들을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해서 선정한 백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부가 싸구려 백신을 공급해서 이윤을 남길 의도도 없을 테고, 축산 농가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제품을 선택했겠지요.”
“허허, 아니라니까. 지난번에 백신 안 해서 구제역 발병했다고 언론에 나온 농장들 대부분 백신 접종을 열심히 했대. 그 사람들이 바보간? 구제역에 걸리면 농장에 엄청 손해가 나는데…. 정부에서 뜯어말려도 백신을 하지 왜 안 하겄어?”

 

농장주만 죄인이 되는 현실

각 농장들은 이를 악물고 농장을 사수해야 한다. 혹시 농장 외부로 나갔다 구제역 바이러스를 옮겨올 수도 있으니 농장 안에서 몇 주일이고 숙식을 해결하며 버텨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방역과 백신을 열심히 해도 구제역 확산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결국 구제역을 막아내지 못한 농장주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다. 하얀 방역복을 입은 정부 방역 요원이 농장에 도착하여 차단대를 설치한다. 농장 입구는 봉쇄되고 소독 차량이 등장해 농장 전체와 인근에 대한 소독을 강화한다. 정부 방역 요원은 농장 내 돼지들의 감염 상태를 확인하고 돼지의 살처분을 결정한다.
농장 한 곳에 구덩이를 파고 FRP 플라스틱 통을 묻는다. 살처분하여 발생한 오염수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고통 없이 죽는 주사를 맞은 돼지들은 한 마리 두 마리씩 쓰러지고 돼지의 주검은 FRP 플라스틱 통에 쌓인다. 이 과정을 더 이상 구제역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반복한다.
…

4월 어느 날 홍성 지역의 구제역이 공식 종료되었다. 다행히 우리 농장은 구제역을 비켜갔다. 아마도 운이 좋아서일 것이다. 2014년 겨울을 지나 2015년 봄까지, 나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 농장은 우리가 지켜야

 

2015년 6월 농림식품부는 구제역 관련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구제역이 창궐할 당시, 중앙 경제지와 인터뷰했던 검역본부장을 포함한 관련자 5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9월, 농림식품부 검역본부는 양돈 농장에 보급했던 백신의 효력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 사실을 숨긴 것이다.
감사를 통해 이 사실이 밝혀졌지만, 책임자에 대한 징계는 감봉 1개월에 그쳤고 고위 공무원은 직급을 유지하였다. 또한 방역 당국은 농민들에게 어떠한 사과 발언도 하지 않았다.

같은 해 여름 구제역에 이어 메르스가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마침 양돈 축산인의 저녁 식사 모임을 가졌는데 이웃 농장 대표가 말을 꺼냈다.
“그래도 사람의 생명이 걸린 질병이라 정부가 구제역보다는 더 잘 대처할 줄 알았는데, 전염병 대책이 영 기대 이하야….”
“그러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보건부 메르스 대처가 농림부 구제역 대처만 못해 보여.”
“도토리 키재기지만 우리야 구제역을 여러 번 겪었으니 대처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것 아닐까?”
“세상에 믿을 놈이 없어. 이번에도 봤잖아. 공무원이 물백신인지 알고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결국 우리 농장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돼.”            
                                              
                    

이 포스트는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