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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꼬이게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법

경영 자기계발/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 않을 때

by 스마트북스 2017. 12. 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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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꼬이게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법

누가 누구를 이용한다고?

 

머리가 매우 좋고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있었다. 친구들이 광고회사에 그를 추천해주었다. 광고란 창의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이니 그에게 맞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광고회사에서 쫓겨났다. 콘셉트회의든 아이디어 회의든 시종일관 표정 없는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단 한 번도 의견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흥, 쥐꼬리만 한 월급을 주면서 감히 내 창의력을 원했던 회사가 미안해해야지.”
저는 스물한 살의 대학생입니다. 젊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일전에 채용박람회에서 모 기업 인사팀 직원이 제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학생, 난 자네가 마음에 드네. 우리 회사로 와주게. 자리를 마련해놓고 기다리겠네.’라고요. 하지만 저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저는 그 회사가 왜 저를 쓰려고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냥 일손이 부족한 겁니다. 저처럼 젊은 사람이 일을 더 많이 할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구인 시장의 속물근성을 저는 정말 참을 수 없습니다. 현실이란 늘 이런 걸까요? 다들 이용하려 들기만 하는 건가요?

우리는 오늘도 '과대평가' 중

스위스 출신의 지식경영인 롤프 도벨리가 사는 아파트에 한 집을 빌려 같이 사는 다섯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도벨리가 그들 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다섯 명이 같이 살면 공동의 쓰레기는 누가 버려요?”
제가요. 80퍼센트는 제가 버립니다.”
그 뒤 다른 젊은이들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주로 제가 버립니다. 60퍼센트 정도는 제가 버려요.”
물론 제가 버리죠. 다 제가 합니다.”
다 제가 버려요. 다른 친구들은 게으르거든요.”
제기랄, 전부 저 혼자 버린다니까요. 다른 애들은 쓰레기를 만들 줄만 알아요.”
이론상 다섯 명이 버릴 공동 쓰레기는 100퍼센트여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을 계산해보면 약 440퍼센트가 나온다. 100퍼센트가 넘는 쓰레기의 정체는 바로 과대평가된 자신의 노동이다.
 
미국에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다. 결혼한 커플들을 모아놓고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데 자신의 기여도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는데, 모두 60퍼센트가 넘는 수치를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혼인관계에 50퍼센트 이상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자기 위주 편향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착각으로 매우 보편적이다.
프랑스에서 조사한 결과, 프랑스 남성 중 84퍼센트가 자신은 평균 이상의 호감형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절반이 평균 이상이면 나머지 절반은 평균 이하라는 말이다. 말인즉슨 최소한 34퍼센트의 프랑스 남성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많다. 조사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능을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했다지능이 평균 이하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능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가치와 능력, 지능, 기여도 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대접 받느니 차라리 안 하고 만다?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기 시작하면 심리적 평행을 이룰 수 없어 극심한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또 현실을 왜곡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선의를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안 그래도 억울한데 화까지 나는 통에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 그 뒤에 남는 것은 좋았던 인간관계의 종결뿐이다.
사회적 관계 혹은 사회적 성과란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여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공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타인의 공을 과소평가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작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가 나의 능력을 이토록 박탈하다니. 차라리 안 하고 말지.’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사회에서 방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기여도를 인정하지 않는 걸까?
먼저, 사람들은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관심조차 없다. 당신이 누군데? 당신이 뭐라고? 그들 역시 자신의 노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들은 절망한다. 사람들은 당신의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자신의 이러한 천성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삶이 수월해지는 4단계 사고

, 이제 스스로가 과대평가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제는 자신을 제어하는 방법을 익힐 때이다. 타인 또한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제는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익힐 때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 삶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첫 번째 단계, 억울함을 느낄 때 자아 평가를 해본다. 억울함의 이유가 자신의 노력에 비해 이익이 적어서 생기는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들인 노력을 현재 상황에서 모두 거두어들인다고 상상해보자. 그랬을 때 상황에 변화가 있는가? 만약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던 것이니, 자아 평가를 다시 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 단계,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를 버리면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은 사라지고 아주 조금 더 냉정한 사고가 가능해진다. 아주 조금만으로도 당신은 머릿속에 타인을 들여놓을 빈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세상에 노기등등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억울함에 눈물 흘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세 번째 단계,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린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노력들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덕을 보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그 덕을 조금 더 많이 누린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억울하고 분노할 이 유는 되지 않는다.
네 번째 단계, 이성적인 사고로 우세를 선점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기 위주 편향에 빠지면 금세 이성을 잃게 되고, 그러면 나에게 유리했던 환경이 돌변하고, 앞으로의 계획들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힘들어진다.

 

어떤 식으로 조종당할까?

퇴근길, 피곤에 찌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채소를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채소가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굳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남은 채소를 모두 사겠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돌아가 쉬길 바랐다. 사소한 일이나마 선행을 했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했다. 채소를 사서 집으로 가다가 문득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할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뒤쪽에서 채소 다발을 꺼내어 늘어놓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찌감치 사람들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사람들을 만족시켜주기로 한 것이다. 뭐가 불만인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스스로 과대평가의 함정에 빠졌을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조종하는지.

이 포스트는 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 않을 때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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