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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슈퍼 히어로들은 모두 아버지가 없을까?

인문 교양 읽기/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

by 스마트북스 2018. 7. 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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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슈퍼 히어로들은 모두 아버지가 없을까?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 | Arrow to the Sun
태양신이 생명의 불꽃을 쏘아 그 불꽃을 받은 한 여성이 아기를 밴다. 아이는 태어나 자라며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을 받고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여정 중에 만난 옥수수밭 농부와 옹기장이에게 자기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보았으나 이들은 이 소년이 누구인지, 누구의 아들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오로지 궁시장(활을 만드는 장인)만이 아이가 태양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고 큰 활을 만들어 소년을 화살로 삼아 태양으로 쏘아준다.
화살을 타고 날아가 태양에 다다른 소년은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 태양은 소년에게 아들임을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 소년은 사자의 키바(푸에블로 인디언들이 제의를 지내는 지하의 방), 뱀의 키바, 벌의 키바, 번개의 키바를 거치는 시험을 치르고, 마지막 번개의 키바에서 번개의 기운으로 생명의 힘을 충만히 얻어 강하고 아름다운 태양의 아들로 성장해 키바 밖으로 나온다. 태양은 마침내 소년이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돌아가서 사람들의 영혼에 생명을 주라며 다시 소년을 화살로 쏘아 땅으로 돌려보낸다. 소년이 태양의 아들로 푸에블로 마을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생명의 춤을 추며 소년을 반긴다.


그들 모두 아비 없는 자식

아버지는 소년들에게 영원한 테마이다. 소년이 남자로 자라는 것은 자신의 기원이자 뿌리가 되는 아버지를 계승하거나 기존의 구태의연한 사회 질서를 대변하는 아버지를 넘어서려고 애를 쓰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소년은 반드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 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 소년은 반드시 아버지를 넘어서야 한다. 아버지에게 돌아가 뿌리를 확인하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방랑자로 살게 되기 쉽고, 아버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자는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서 아버지의 뜻에 한 번도 거역해보지 못하고 눌린 채 살아갈 수도 있다. 태양으로 날아간 화살은 근원이 되는 아버지를 확인하고 세상으로 돌아가 당당히 서는 과정을 통해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서사를 담은 동화이다.
살아 있는 아버지를 둔 영웅, 혹은 슈퍼 히어로가 있으면 어디 대보시라. 돌이켜보면, 신화 속 많은 영웅은 아버지가 부재한 존재로 그려진다. 어느 신이 처녀를 잉태시켜 아이를 낳게 했다는 신화는 대부분 그저 아버지가 부재한 영웅이 성공한 이후 후일에 따라붙은 신격화일 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와 페르세우스는 제우스가 아버지라며 처녀 임신 스캔들을 입막음한 영웅들이고,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라딘도 아버지가 없었기에 덜컥 모험을 따라나설 수 있었다. 아서 왕이 유더 왕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오직 멀린의 마법과 돌에 꽂힌 칼을 뽑는 기적뿐이고, 설사 유더 왕의 적자라 할지라도 아버지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없이 자란 소년일 뿐이다.

아버지가 없는 자, 세상을 바꾼다

소설 발생 이후 문학 작품으로 넘어와 위대한 유산의 핍, 보물섬의 짐, 모비 딕의 이스마엘, 톰 소여의 모험의 톰 소여도 아버지는 이미 죽고 없었다. 더 나아가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현대 슈퍼 히어로 중에서 살아 있는 아버지를 둔 영웅이 있던가?
거꾸로 생각하면,
슈퍼 히어로가 되려면 아버지는 없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아버지가 없는 자만이 아버지를 찾는 여정, 퀘스트quest를 떠나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의 결핍이 외려 소년으로 하여금 뿌리와 근원을 찾고자 하는 여정을 떠나게 만들고, 소년은 그 여정을 따라 걷다가 아버지상을 찾아서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사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는 아버지가 없어야 한다. 아니, 기존의 질서를 대변하는 아버지가 없어야 소년은 남자로 커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 동화에서 소년은 태양의 아들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제 현실의 삶에서는 아비 없는 자식으로 그려진다. 부족 사회에서 이 소년은 이것 때문에 주변인이고 소외되었다. 이러한
삶의 결핍은 곧 삶의 추진력이 되며, 목적이 있는 여정인 퀘스트에 나서게 만든다.
소년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다지는 작업에 나선다. 소년은 여정에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본질을 알아봐 주는 이들을 찾는다. 처음 만난 옥수수밭 농부는 주식인 옥수수 재배에 골몰하며 생계에 매여 있는 터라 소년의 진짜 본질을 알아보지 못한다. 두 번째로 만난 옹기장이는 무언가를 빚어내는 사람이긴 하나, 생활에 필요한 그릇을 그 쓰임에 맞게 개수를 채워 정해진 틀 대로 만드는 사람인지라 역시나 소년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만들어 화살을 세상으로 쏘아 보내고 어떤 화살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 돌아가기 위해 떠나온 아이의 본질을 이해한다. 그래서 소년을 태양으로 쏘아 보내준다, 아니 인도해준다. 소년이 원하는 곳, 자신의 근원과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네 가지 키바, 네 가지 시험

태양은 상징적인 아버지이다. 실제 아버지여도 되고 아버지 상을 제시해주는 인물이거나 사건이어도 상관없다. 이 상징적인 아버지와 마주해서 엄청난 태양의 빛, 생명의 빛이 자신 내부에 있음을 확인한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와 조우하는, 때로는 아버지와 대면하고 맞서는 과정이 가지는 의미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서 자신의 힘을 확인한 자는 그것을 끌어내는 법도 알아야 하는바, 반드시 시험을 거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네 개의 키바를 거치는 시험이다.

첫 번째 키바는 동물적인 본능을 통제하는 시험이다. 사자는 태양신에게 가는 길목을 지키는 보초였으며, 연금술에서 사자의 의미는 이성을 폭력에 종속시키는 본능의 힘을 상징한다.
, 첫 번째 키바에서는 파괴적일 수 있는 본능의 힘을 갈무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는 본능을 배척하고 전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잘하는 사람이지, 절대 본능에 재갈을 물려 길들이는 자가 아니다. 그래서 사자의 키바에서 소년은 사자를 한 번 움찔하게 만들어 자신의 힘을 확인할 뿐이다.
두 번째 키바는 뱀의 키바이다. 뱀은 땅에 붙어서 미묘한 땅의 진동을 느끼는 존재요, 땅속 깊은 무의식의 세계, 혹은 태고의 비밀을 아는 존재이다. 눈꺼풀이 투명하기 때문에 그 감지않는 눈으로 의식 아래 기저를 응시하는 존재이고, 탈피를 통해 재생하고 변화하는 불멸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뱀의 키바에 들어간다는 것은 노래가 아닌 노래, 쉬쉬거리는 뱀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무의식 속의 어둠을 응시하는 지혜와 용기를 갖추게 된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자신 내부의 어둠과 연약함을 아는 자이다. 이러한 이해가 있는 자만이 다른 인간을 껴안을 수 있기, 뱀의 키바는 무의식의 포용을 통한 자아의 확장과 탈피를 의미하는 시험의 장이라 볼 수 있다.
세 번째 키바는 벌의 키바이다. 벌은 태양과 꽃을 중개해 꿀을 만드는 존재들이다. , 태양빛을 황금으로 만드는 존재로, 고대 신화 중에는 신과 여신들은 거대한 벌집에서 태어난다는 믿음도 있었다. , 벌의 키바는 평범한 사람이 내면에 새겨진 신의 형상을 끌어내는 시험의 장이다.
네 번째 키바는 번개의 키바이다. 번개는 창이나 칼처럼 존재에 내리꽂히는 통찰 혹은 깨달음을 의미한다. 미몽에 빠진 존재를 때려 기어코 변화시키는 힘이다. 때로는 인간이 변화하는 데에는 내부에서 시작하는 느리고 잔잔한 변화도 필요하지만, 신적 개입, 즉 데우스 엑스 마키나
Dues ex Machina(‘기계 장치로 내려온 신이라는 뜻으로 원래 연극무대에서 갑작스러운 외적 개입에 의해 플롯이 풀리는 문학적 장치를 가리킨다. 갑작스럽게 상속인임을 알리는 편지가 발견된다거나 알고 보니 두 남녀가 남매라든가 식의 플롯 해결 장치이다. 여기서는 갑작스러운 외부의 개입이라는 뜻으로 썼다) 같은 강력한 외적 개입도 필요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내부에서 천천히 변화가 되어 온전한 변화를 기다리는 상태가 되자, 앞선 세 개의 키바를 거친 자만 외적 개입이 강렬하게 찾아와 그 존재를 흔들어탈바꿈을 시킨다는 뜻이다. 흔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진인사대천명眞人事大天命의 경지이기도 하다. 진정한 변화는 내적인 변화가 외적인 기회를 만나 비로소 표출이 되기 때문이다.

되돌이표가 아닌 나선형 회귀

본능을 갈무리하기, 내면의 어둠을 응시하기, 내면의 신성을 끌어내 표출하기,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가 이를 잡아 날개를 달기. 이게 각각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말하는 네 개의 키바, 사자의 키바, 뱀의 키바, 벌의 키바, 그리고 번개의 키바가 상징하는 시험이다. 소년은 이 시험들을 거쳐서 진정한 남자 어른이 된다.
푸에블로 인디언의 서사가 매력적인 건 여기서 끝나지 않고, 소년이 자신의 고향 공동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장 자체의 참된 의미는 개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세상에 돌아가 세상을 바꿀 때 드러난다. 그래서 태양은 네 개의 키바를 무사히 거치고 나온 아들을 다시 푸에블로 마을로 쏘아 보낸다. 소년은 고향으로 환원한다. 제대로 된 환원은 통속적이지 않다. 되돌아가는 것이 단순한 되돌이표가 아니라 한층 발전해서 돌아가는 나선형 회귀가 될 때, 환원은 성장을 완결시킨다.
소년은 고향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전하여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살린다. 기쁨으로 생명의 춤을 추는 사람들이 소년을 둘러싸고 모인다. 소년은 이제 비로소 사람들 가운데 서서 당당한 남자로서 웃는다.

강하고 지혜로운 아버지상을 찾아서

 

현대인에게 아버지라는 의미는 더 복잡하다.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들은 근대 산업사회가 시작되며 가정에서 분리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가정과 일터가 같았을 적에 아버지들이 가졌던 권위는 무너졌고,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입지는 점점 작아졌다. 이렇게 이미 부재한 아버지를 다시 부재하게 만들고, 이미 줄어든 아버지를 다시 넘어서라고 하는 건 외려 더 어렵다. 이미 부재하기에 제대로 부재하게 만들기 어렵고, 이미 줄어들어서 제대로 넘어서기가 힘들다.
아버지들이 불쌍하지 않냐고? 사실 딱히 그렇지는 않다. 산업사회에서 파편화된 건 비단 아버지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파편화된 개인을 통합시켜 온전해지기 위해서라도 소년들은 근원적이고 강하고 지혜로운 아버지상을 찾는 여정을 떠나야 한다.

이 포스트는 빨간모자가 하고싶은 말에서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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